최근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중소형 주공아파트를 매수한 양 모씨(45)는 정부의 임대주택등록 세제 혜택을 믿고 매입 결정을 내렸다. 현재 직장이 있는 지방에 집을 사서 거주하고 있어 당장 서울 집에 살 필요는 없지만 향후 서울로 이직할 것을 대비해 미리 집을 사고 임대사업자로 등록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조성하겠다며 임대주택등록을 강력하게 권한 게 엊그제인데 갑자기 세제 혜택을 줄이겠다고 하면 앞으로 누가 정부 정책을 믿으려 하겠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정부가 매일같이 부동산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오락가락 번복되는 사례가 많아 국민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전세자금대출 보증 강화 대책이 하루 만에 변경되는가 하면 당초 예정돼 있던 용산·여의도 개발계획이 갑작스레 무기한 연기됐다. 그러자 '졸속 정책' '아마추어 행정'이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시장 상황을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주택금융공사는 10월부터 전세대출보증 자격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주택 실수요자인데도 소득이 7000만원이 넘는다는 이유로 전세보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혹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는 전세자금대출 보증 요건과 관련해 "무주택가구에 대해선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전세자금대출 보증을 받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고 번복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인은 "갭투자가 우려되니 정부가 전세자금대출을 규제한다고 강하게 나서더니 하루 뒤 꼬리를 내려 결국 전 국민에게 '갭투자' 홍보만 한 셈이 됐다"며 "평소 부동산에 관심 없다가 전세자금 규제가 이슈가 되면서 비로소 갭투자에 관심을 갖게 된 지인도 꽤 된다"고 꼬집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스터플랜 발표가 임박했던 용산·여의도 통합개발계획을 전면 보류하겠다고 발표해 시장을 발칵 뒤집어놨다. 현재의 엄중한 부동산 시장 상황을 고려해 주택시장이 안정화할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달 10일 리콴유 세계도시상 수상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을 때 용산과 여의도를 전면 개발하겠다고 발표해 잠잠했던 용산과 여의도 아파트 시장을 들쑤셔 놓았다. 서부이촌동 주민들은 "2000년대 후반에도 용산국제업무지구를 개발한다고 난리를 피우다가 결국 중단되더니 또 서울시가 왔다 갔다 한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쓴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임대등록을 이용해 투기하는 수요가 얼마나 되겠느냐"며 "현 시장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책 모두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토부는 매달 임대사업자 등록 추이를 발표하며 정책 홍보에 공들여 왔는데 하루아침에 입장을 뒤집은 것은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 원장은 "과세그물망을 벗어난 미등록 임대를 찾아 세금을 때리게 되면 결국 임대 의무화가 되는 것"이라며 "정보망을 쥐고 있는 정부로선 굳이 세혜택을 줘 가
도시계획학 박사 출신으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한 김현아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와 여당은 더 이상 부동산으로 정치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범주 기자 / 용환진 기자 /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