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안 심리에 대한 선제 대응이란 측면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경기권에 물량이 집중되는 데 따른 민심 역풍과 정권 내 목표 달성을 위한 시간 싸움, 공기업들의 천문학적 자금 부담까지 넘어야 할 산이 한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공공주택 공급 '로드맵'의 실상을 뜯어보면 여러 측면에서 MB정부의 보금자리주택과 닮아 있다. 그린벨트 해제라는 수단을 비롯해 목표치도 비슷하다.
현 정부의 수도권 공급 목표치는 이번에 발표한 추가 택지 14곳에서 24만가구를 비롯해 기존 30곳에서 12만가구 등 총 36만가구다. MB정부는 2012년 말까지 수도권에서 총 32만가구 보금자리주택 공급을 목표로 내세웠다.
그러나 정권이 끝난 2012년 말 기준 총 21만가구를 공급하는 데 그쳤다. 목표치의 66%만 채웠다. 문재인정부 역시 정권 내 공급 목표치를 채우려면 매년 8만가구 이상을 수도권에서 공급해야 한다. 문제는 10년 전보다 가용 토지는 더 줄어들었고 그린벨트 해제를 위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상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사업이 하세월로 길어지다 보면 시장에 필요한 공급 효과는 감퇴될 수밖에 없다.
보금자리주택만 해도 10년 전 택지로 지정하고 사전예약까지 받은 곳을 지금에서야 청약받는 곳도 있다. 수요 부족, 토지보상 지연, 공기업 재무구조 악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사업이 미뤄진 탓이다.
2010년 사전청약을 받은 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아직 본청약을 하지 않은 하남 감일지구 B1·B3·B4블록 등 3곳이 대표적이다. LH는 이들 단지에 대해 연내 본청약을 할 계획이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같은 해 사전청약을 받은 서울 구로구 항동지구 2·3블록도 올해 5월과 8월이 돼서야 본청약을 받았다.
지난 27일 추가 공급을 발표하는 브리핑 자리에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교통이 편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공급하며 서울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고 자신했다. 지난달 발표한 30곳(12만가구)에 신규 택지 14곳이 추가됐다.
28일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신규 택지 일부를 포함하고 있지만 기존에 공공기관·지자체들이 수도권에 보유한 택지를 이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공급하게 될 것"이라며 "택지는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매일경제신문이 수도권 공공주택 공급을 담당하는 LH와 SH공사, 경기도시공사 등의 택지개발정보자료를 통해 파악한 결과 해당 기관들이 보유 또는 개발 예정인 토지 가운데 기존 발표지를 제외한 곳에서 서울 대체수요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은 10곳 중 1~2곳에 불과했다.
서울 남부의 경기지역 중에선 하남 공공주택지구인 감일지구에서 약 1만가구, 성남 금광지구에서 5000가구 정도 공공이 확보한 물량이 있다. 경기 북부권에서는 기존에 지하철 3호선과 경의선 등이 지나고 광역급행열차(GTX-A) 등 착공이 예정된 고양 대곡역 일대를 비롯해 남양주 별내 등에서 1만~2만가구 건립이 가능해 보인다. SH공사 보유 용지 중에는 고덕강일과 구로 항동 등에서 1만가구 물량이 추가로 나올 수 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올해 LH가 민간에 공급하는 토지만 봐도 서울 대체지는 전무한 실정"이라며 "서울 도심 또는 적어도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적정 수준으로 택지가 공급돼야 하는데, 공공이 24만가구 추가 공급이라는 목표 달성에만 쫓기다 보면 수요가 많지 않은 지역에 공급이 집중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10년 전 보금자리주택사업 추진 때는 과천지식정보타운 내 보금자리주택이 당초 1만가구 규모로 발표됐다가 과천시와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절반 수준인 5000가구로 축소된 바 있다.
물론 국토부가 서울시·경기도 등과 협의해 기존 발굴 택지 외에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완전히 '새 땅'을 찾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6일 용산·여의도 개발 보류를 발표하면서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서울 시내 빈집 1000가구를 매입해 임대한다는 임대공급책만 내놨을 뿐이다.
정부가 실적 채우기에 급급해지면 해묵은 강제수용 및 보상 갈등도 재연될 수밖에 없다. 갈등 조짐은 벌써 일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신혼희망타운 후보지인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 일대는 분당 시가지와 가깝고 율동공원을 접해 서울 대체지로 관심이 크지만 벌써 토지 10%가량을 보유한 분당중앙교회를 중심으로 뭉친 토지주들이 수용에 반발하며 비상대책모임까지 만들었다.
대구 연호동 신혼희망타운 후보지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이미 민간기업이 주택 분양까지 마친 사업지가 공공주택지구에 포함되면서 사업자와 수분양자들이 상경해 국회와 청와대 앞에서 항의시위도 벌였다. 정부의 무분별한 공공주택지구 지정은 사업주체인 공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특히나 현 정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토지 기준시가가 오르는 만큼 감정금액과 보상금액도 늘어난다.
실제 MB정권 말로 접어든 2011년 말 보금자리주택사업 총대를 멘 LH 부채는 125조5000억원에 달했다. 당시 LH 부채의 약 15%가 보금자리주택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정부는 내년 주택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공시가격 인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공시가격을 인상하는 데 따라 보상비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도 동반 상승한다는 점이다. 땅값이 상승되는 데 따라 LH·SH공사 등 사업주체의 토지매입비 부담은 껑충 뛰게 된다.
개발정보업체 지존의 신태수 대표는 "공공주택들이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하기로 돼 있어 LH나 SH공사가 토지주들이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보상하기가 힘들
국토부 관계자는 "구체적인 사업 완료 시점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시장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다음달 추석 전에 수도권의 신규 택지 몇 개를 발표하면 궁금증과 의문이 해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용 기자 / 손동우 기자 / 정순우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