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ABCP 디폴트 후폭풍…국내증권사 소송전 비화

중국 에너지기업의 회사채 부도로 최대 1150억원 규모의 손실 부담을 안은 국내 증권사들이 소송전까지 불사하며 피해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중국 기업 관련 금융상품의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엉뚱하게 국내 증권사 간 매매 계약에 대한 신뢰성 문제로 확전되는 모양새다.
1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유안타증권은 현대차투자증권을 상대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매매 이행에 관한 소장을 법무법인 원을 통해 법원에 제출했다.
이 같은 소송전은 지난 5월 중국 대형 에너지기업인 중국국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회사 CERCG오버시즈캐피털이 채권 원리금 상환에 실패하면서 시작됐다. 국내 증권사들도 CERCG가 보증한 1150억원 규모의 ABCP를 매수했기 때문이다. 이에 CERCG는 자체 구제안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구제안 발표는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유안타증권과 신영증권은 보유한 ABCP 물량을 현대차투자증권이 거래해주겠다고 사전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두 증권사에 따르면 ABCP와 관련해 디폴트가 발생하자 현대차투자증권이 약속과 달리 갑자기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겠다며 발뺌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차투자증권이 예약 매매를 해주기로 한 물량은 유안타증권 150억원, 신영증권 1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유안타증권이 먼저 소송전의 포문을 열었다. 유안타증권 관계자는 "전화를 통한 예약매매는 증권사 간 거래에서 흔히 쓰이는 수단이기 때문에 여기에 법적 유효성을 따지는 것은 그간 관행을 뒤집는 것"이라며 "합의를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지만 현대차증권에서 아무런 응답이 없어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말했다.
신영증권도 현대차투자증권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증권사는 소송전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전화나 메신저와 같은 비공식적 수단을 통한 증권사 간 매매계약을 법적으로 유효하다고 인정한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2009년 현대증권(현 KB증권)은 동부증권(현 DB증권)이 메신저를 통해 기업어음 예약매매를 했는데 이를 이행하지 않자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메신저를 통한 매매약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투자증권은 해당 물량은 공식적인 플랫폼을 통한 거래가 아니기 때문에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일호 기자 / 김제림 기자 / 박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