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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1조3239억원 규모 순매도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개인과 기관이 각각 9889억원, 660억원을 순매수한 반면 외국인만 나 홀로 조 단위 물량을 쏟아냈다. 외국인은 앞서 지난 1월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당시 2조원에 가까운 순매수를 기록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발 무역전쟁과 미국 기준금리 인상 우려 등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지난 2월부터 매도세로 돌아섰다. 2월 한 달 동안 1조5611억원 규모 순매도를 기록한 데 이어 3월 7409억원, 4월 1조375억원, 5월 1조3239억원 등 넉 달 연속 순매도 행진을 이어갔다.
외국인들이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는 데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제일 큰 원인은 신흥국 자금 이탈이다. 최근 들어 미국 달러화가 강세로 돌아서면서 아르헨티나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이에 따른 여파가 터키 브라질 등 신흥국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원화값 또한 연일 하락세를 기록하면서 외국인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전일 대비 3.4원(0.31%) 하락한 1085.40원으로 마감했다. 지난 2월 9일(1091.00원) 이후 최저 수준이다. 달러화 가치가 연일 뛰어오르는 것은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선까지 상승하고 이탈리아발 정치적 불확실성에 유로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현재 외국인들은 신흥국 시장 전반에 대해 매도세를 기록하며 한국 주식 또한 팔아치우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의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미국 기준금리 인상, 유럽 경기 불확실성, 아르헨티나 구제금융 등으로 인해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시장에서 자금을 빼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르헨티나와 터키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무관하게 문제가 있던 국가들이었기에 이번 위기가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덧붙였다.
다음달 중국 A주가 글로벌 주가지수 산출기관인 MSCI의 신흥국(EM) 지수에 편입됐다는 소식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지난 14일(현지시간) MSCI는 '2018년 5월 지수 리뷰'를 발표하고 중국 본토에 상장된 234개 종목을 MSCI 중국지수와 MSCI EM지수 등 각종 종합지수에 편입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MSCI EM지수 내 중국 비중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레 한국 비중 축소와 패시브(인덱스) 자금 유출이 불가피해졌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남미 지역을 중심으로 신흥국 시장이 출렁이면서 글로벌 투자자금 유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데 한국이 신흥국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영향이 불가피하다"며 "중국 A주가 MSCI에 편입돼 수급상 불리한 환경이 됐고 삼성전자 이외의 상장사 실적이 주춤하고 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한 가지 요인 때문이라기보다는 한국의 투자 매력이 떨어지면서 외국인들이 투자 물량을 조금씩 줄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시총 상위주를 중심으로 외국인들 매도세가 몰리면서 패시브 자금 이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2일 코스콤에 따르면 이달 들어 지난 21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삼성전자를 2897억원어치 순매도하고 셀트리온과 현대차 또한 각각 2504억원, 2170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 밖에 LG화학(1170억원), SK이노베이션(983억원), 현대중공업(887억원), 네이버(706억원) 등도 동반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시총 상위주뿐만 아니라 최근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상승세를 탄 남북 경협주까지 함께 팔아치웠다. 이달 외국인이 가장 많이 순매도한 종목은 현대건설로 규모가 3435억원에 달한다. 현대로템과 현대엘리베이터 또한 각각 2501억원, 675억원씩 순매도했다. 현대건설은 과거 북한 경수로와 금강산 문화회관 등 대북 건설사업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 앞으로 남북 경제협력에 따라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꼽힌다. 현대로템 역시 경의선과 동해선 등 남북 철도 연결 논의로 남북 경협주로 급부상한 종목이다.
한편 외국인이 언제 매수세로 돌아설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문가별로 의견이 엇갈렸지만 시총 상위주 등 대형주가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윤 센터장은 "한국 증시를 끌어왔던 외국인 자금의 핵심은 유럽과 많이 연동되는 경향을 보인다"며 "2분기 중 유럽 경기가 안정세를 찾고 외국인 매도세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주식을 다시 산다면 그 이유는 주주가치 때문일 것"이라며 "배당수익이나 주주가치 제고,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이 이뤄졌을 때 (투자 수익이) 기대되는 건 이연 현금이
이 센터장은 "3분기까지는 불안한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고 4분기에 들어서야 외국인이 순매수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말 외국인이 다시 한국 주식시장으로 들어온다면 시총 상위주와 업종 대표주 등 대형주를 중심으로 매수세를 기록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윤구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