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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지배구조 '청구서' 지불을 위해 오너 지분이 16.4%로 많은 편인 비상장 계열사 현대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IPO) 카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3년 만에 다시 이 종목에 상장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기업 가치가 오르고 있다.
증권가 추정대로 이 종목 상장 후 시가총액이 10조원까지 오르면 오너 일가의 지분 가치도 상승해 그룹 지배구조 개선 비용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30일 38커뮤니케이션 등 장외주식 정보업체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 장외 시세는 29일 84만원을 기록했다. 전날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선안 발표 이후 하루 새 12.7% 급등했다. 이 종목이 상장돼 지배구조 개선의 자금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를 끊기 위해선 기아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23.3%를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매입해야 한다.
29일 현대모비스 시가총액은 24조7253억원이다. 현대모비스는 애프터서비스(AS)·모듈 사업을 현대글로비스로 넘기고 존속법인과 분할법인에 각각 0.79대 0.21의 분할비율이 적용됐다.
이에 따라 현대모비스 존속법인 시총은 개편안 직전의 79% 수준으로 축소되므로 이를 감안한 시총은 19조5320억원이 된다. 여기에 오너 일가의 지분율(23.3%)을 적용해보면 오너 일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4조5512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오너 일가가 현대모비스 지분을 받는 대신 내놓기로 한 통합 현대글로비스는 현대모비스의 핵심 사업이 넘어오는 만큼 시총이 기존보다 커지게 된다. 한국투자증권은 현대모비스의 애프터서비스(AS)·모듈 사업을 포함한 합병 현대글로비스의 시총을 20조원으로 추정했다. 기존 30%에 달하는 현대글로비스 오너 지분은 15.8%로 줄어드는데 이는 3조1600억원 가치를 지닌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은 사실상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주식스왑(교환)으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는 것이다. 문제는 오너 일가 입장에서는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아직 현대글로비스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두 주식의 지분 가치 차이는 1조3912억원에 달하는데 여기에 현대차그룹이 양도세 부담액으로 밝힌 1조원을 포함하면 2조4000억원가량이 비용 부담으로 남는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확실한 것은 오너 입장에서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자금이 모자라다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 오너들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매각, 금융권 대출, 비상장 계열사 IPO 등 다양한 후속 방안이 논의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선 오너 일가의 현대·기아차 지분 매각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는 만큼 오너 일가의 다른 계열사 지분과 그 가치가 주목되고 있다. 29일 기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하고 있는 계열사(현대·기아차·현대글로비스·현대모비스 제외) 지분 가치는 1조9835억원이다. 이 지분을 모두 매각해도 여전히 4000억원가량 부족한 상태다.
바로 이 대목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 IPO가 부상하고 이 종목의 장외 주식 가격이 뛰고 있다. 오너 일가가 목돈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윤석모 삼성증권 연구원은 "오너 일가가 모비스 분할 및 글로비스 합병 후 합병사 지분을 매입하려면 자금 마련의 일환으로 현대엔지니어링 IPO를 만지작거릴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일각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이 비상장 주식으로 거래돼 제값을 못 받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실제로 2015년 현대차그룹이 현대엔지니어링 IPO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이 종목은 자본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전례가 있다. 당시 증권가에서 내놓은 예상 시총은 10조원에 달했다.
이후 건설업종 침체로 3년 만인 이달 29일 기준 장외시장에서 시총은 6조4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그러나 증권가에선 2001년 설립된 이 업체가 매년 수익성을 높여왔고 작년에 국내 건설사 중 가장 많은 해외 수주를 올린 만큼 그 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배구조 개편과 관계없이 이 업체의 성장성만 봐도 현재 몸값은 크게 저평가돼 있다는 분석이다.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은 각각 4.7%, 11.7%에 달한다. 향후 IPO를 통해 시총이 10조원이 된다는 가정에 따르면 오너 지분 가치는 1조6400억원에 달한다. 29일 기준 가치보다 5904억원이 커져 여전히 오너 입장에서 남아 있던 4000억원의 부담을 말끔히 제거할 수 있게 된다.
IPO를 통한 현금 확보는 과거 정의선 부회장의 사례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2014년 8월 정의선 부회장은 이노션 IPO 때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확보했고, 앞서 현대글로비스 매각 대금과 함께 이 자금을 2015년 현대차 지분(2.3%) 매입에 썼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당시 현대글로비스와 이노션 지분 매각은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나왔지만 이후 현대차 지분을 매입하는 데 쓴 것을 보면 큰 틀에서 지배구조 체제 강화에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건설과 합병해 우회상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상장사와 비상장사 간의 결합이라 합병 비율에 따른 논란이 예상된다.
백광제 교보증권 연구원은 "오너 일가 입장에선 현대건설보다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이 많기 때문에 현대엔지니어링에 유리한 합병 비율이 예상되고, 이에 따라 현대건설 주주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통
[문일호 기자 / 고민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