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장사 주총시즌 돌입 ◆
270석 규모의 총회장을 가득 메우고도 자리가 모자라 뒤편에 자리를 잡고 지켜보는 주주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의 '주인공' 백 사장이 주총장으로 입장하자 주주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기자가 "연임을 자신하느냐"고 묻자 그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엷은 미소만 띠었다.
주총은 이날 예정대로 오전 10시에 시작됐다. 주총의 핵심 안건인 백 사장 선임 안건은 두 번째로 상정됐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전날(15일) 중립을 선언한 것이 이날 주총 현장에서도 화두였다. 중립 의결권 행사는 다른 주주의 찬성, 반대투표 비율을 의안 결의에 그대로 적용하는 투표방식이다. 일부 주주들은 "이미 판세는 연임으로 결정난 거 아닌가"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주주들의 마음은 급했다. 연임 의결에 앞서 감사보고와 영업보고가 예정돼 있었으나 한 주주가 "영업보고서는 모두 배포된 자료에 나와 있다. 의결로 바로 넘어가자"고 제안해 곧장 각 안건에 대한 의결로 차례가 넘어갔다.
백 사장 연임 안건에 대한 표결을 앞두고 주주들의 입장 표명이 이어졌다. 2대 주주(6.9%)인 IBK기업은행을 대표해 서치길 IBK기업은행 전략기획부장은 "KT&G 분식회계 건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조사가 끝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기업은행뿐 아니라 모든 주주에게 피해가 갈 수 있는 것"이라며 "사장 후보 추천절차도 투명하지 못했다. 중요한 일일수록 상식과 절차를 지켜달라는 게 기업은행의 입장"이라고 발언했다.
↑ IBK기업은행의 반대에도 백복인 KT&G 사장이 연임에 성공했다. 주주총회에 참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 수 가운데 76.26%의 동의를 얻었다. 16일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본사에서 백 사장이 주주총회를 진행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제공 = KT&G] |
그러나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됐던 국민연금이 중립 의견을 내고 사실상 기권함에 따라 유일하게 IBK기업은행만 공개적으로 반대의 뜻을 낸 주주로 남아 '외로운 싸움'이 됐다.
IBK기업은행 의견에 대해 또 다른 주주는 "백 사장의 연임 절차는 추천위원회를 통해 적법하게 진행됐다고 생각한다. 주주들에게 통과를 호소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백 사장 연임 건은 주총 시작 30분 만에 싱겁게 결론났다. 위임장 제출을 포함해 주총에 출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 수 9328만7928주 가운데 7114만2223주가 연임에 동의(76.26%)했다. 주총에서 상정된 안건이 통과되려면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 찬성이 있어야 하고 이 비율이 발행주식총수의 25% 이상이어야 하는데 넉넉하게 요건을 충족시켰다. 이에 따라 백 사장은 2021년까지 3년 더 임기를 보장받게 됐다. 백 사장은 KT&G의 전신인 한국담배인삼공사의 공채 출신 첫 최고경영자(CEO)로서 1993년 입사 이후 26년 동안 글로벌, 생산·연구개발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15년 KT&G 사장으로 취임한 이후 매년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IBK기업은행은 이날 주총에서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으나 이마저도 무산됐다. KT&G의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해 이사회 이사를 8명에서 10명으로 늘리자고 했지만 부결된 것이다. KT&G 정관에 따르면 이사회는 모두 10명의 이사를 둘 수 있다. 현재 이사회는 백 사장을 포함해 2명의 사내이사, 6명의 사외이사 등 모두 8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KT&G가 추천한 백종수 법무법인 동인 변호사가 새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백 변호사는 IBK기업은행이 추천한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와 황덕희 법무법인 서울 변호사 등 2명과의 표 대결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같은 압도적 표심에 대해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려는 주주들의 적극적 참여가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앞서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는 '관치'가 우려된다며 연임에 찬성 권고를 하기도 했다. ISS의 권고는 KT&G 지분 53.2%를 보유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의결권 행사(주로 위임장 제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적 증가에 따른 배당 증가로 인해 약 30%의 지분을 보유한 개인과 기타 투자자들도 백 사장의 연임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정부의 반대 사유로 제시된 분식회계 의혹 등은 이날까지 결론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KT&G 관계자는 "수출이 성과를 내고 있고 배당 역시 기업 규모에 비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주주들의 마음을 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러나 백 사장에게 많은 숙제가 남겨졌다는 의견도 있다. 비록 연임
[문일호 기자 / 대전 =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