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된 공기업 지배구조 진단
↑ 27일 연세대 경영관 용재홀에서 `소유 분산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현황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앞줄 왼쪽부터 박경서 고려대 교수, 박유경 APG(네덜란드 연기금) 에셋매니지먼트아시아 지배구조 담당 이사, 손태승 우리은행장,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 [이충우 기자] |
"정치권 등 외부 개입이 없어야 한다. 주요 지분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가가 감시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고 전문경영인(CEO)이 사적 이익을 추구하면 강력한 법적 처벌이 있어야 한다."(박경서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27일 '소유 분산 기업의 소유·지배구조 현황과 개선 방안'을 주제로 매일경제신문과 한국이사협회, 서울대 법과대학 금융법센터, 고려대 아시아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세대 경영대학 재무연구센터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민영화된 공기업이 소유 분산 구조로 가면서 주인 없이 유지되다 보니 '깡패 권력' 같은 정치 권력이 이들 기업을 흔들어왔다"며 "미국 상장사 대부분이 과점주주 체제이고 국내에서도 우리은행과 같은 사례가 있는 만큼 엉망이 된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 참석자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과점주주 체제는 주요 주주들이 장기투자를 전제로 회사의 지배권을 행사하는 체제다. 약 5% 이상 주식을 소유한 4~6개 과점주주가 30%가량의 지분을 소유한 가운데 이들 과점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가 이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구조다. 주주의 대표성이 있는 사외이사는 CEO의 '폭주'를 막을 수 있어 효과적이라는 의견이다.
이 같은 지배구조 체제는 우리은행으로 대표된다. 현재 우리은행의 지분 구조는 예금보험공사(18.5%) 국민연금(9.4%) IMM PE(6%) 우리사주조합(5.4%)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금보험공사의 지분이 매각되면 IMM PE 이외에 동양생명(4%) 미래에셋자산운용(4%) 유진자산운용(4%) 키움증권(4%) 등이 과점주주군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민영화된 다른 공기업들은 '주인 없는 회사'로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포스코는 소액주주 비중이 56%에 달하고, KT&G는 53.2%로 '소유 분산형 기업'으로 과점주주가 부재한 상태다.
그동안 포스코, KT, KT&G 등은 대규모 해당 업종의 독과점 기업 성격이 강해 정부의 규제가 쏠려 있고 은행은 규제산업의 특성상 소유가 제한돼 있어 주요 지배 주주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는 경영의 전문성 강화라는 장점이 있으나 책임 경영의 부재, 경영 감시 기능의 약화라는 단점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이 같은 '무주공산'을 틈타 정치 권력은 CEO를 입맛대로 바꾸거나 인사에 관여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날 박상용 교수는 "민영화 기업 사외이사를 역임하는 동안 정부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면서 "이들 기업의 경영에 간섭하는 사례야말로 '적폐'이며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현상은 글로벌 트렌드를 역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때 소유 분산 기업의 '천국'이라던 미국도 대부분 과점주주 체제로 돌아섰다. CEO가 책임 경영 대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례가 잦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박상용 교수는 "미국에서는 과점주주를 블록홀더(Blockholder)라 하며 주요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을 말한다"고 정의한 후 "미국 상장사의 96%가 이 같은 블록홀더 체제로 이사회에 힘을 싣고 CEO는 견제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서 교수도 정치권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성을 강조했다. 그는 "외부 권력에 의한 임원의 낙하산 임명, 임명된 CEO조차 연임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모험 경영'을 하려는 의지 부재와 같은 폐해가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제도나 환경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가 강할 경우 오너 경영으로 대표되는 가족경영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경서 교수에 따르면 국내 기업은 법 제도상 대륙법에 근거하고 있고 강한 정부 및 관료주의, 강성 노조 등에 노출돼 있어 기업들이 오너 등 일부 주주가 강력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지배주주 경영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경서 교수는 "미국에서는 가족경영 체제와 전문경영인 기업의 성과를 비교해보니 가족경영의 수익성이 높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며 "인수·합병(M&A)과 같은 주요 의사결정이 민영화된 공기업에서는 방치되고 있는데, 결국 의사결정 주체의 부재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후진적 정치색이 민영화된 공기업을 망쳐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참석한 김세형 매일경제 고문은 "현 정부가 은행
[문일호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