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상화폐 손떼는 은행 ◆
신한은행이 오는 15일부터 가상화폐 거래소로 들어가는 돈줄을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주요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코빗, 이야랩스에서 신한은행 계좌를 이용하던 거래자들은 자금을 새로 투입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을 위한 점검사항이 늘면서 시중은행이 도입을 준비 중인 실명계좌 시스템 개통 시기도 기존에 예상했던 이달 20일보다 더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기존에 만들어진 가상계좌에 대해서도 15일부터 추가 입금을 금지하고 출금만 가능하도록 할 예정"이라며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정교화할 때까지 입금은 막을 예정이며 실명계좌 시스템도 이 같은 시스템을 확충할 때까지 도입을 무기한 연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명확인 입출금서비스는 거래사 실명계좌와 가상화폐 취급업자의 동일 은행 계좌만 입출금을 허용하는 서비스다. 가상계좌를 악용한 범죄 가능성을 줄이고 세금을 쉽게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신한은행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이유는 가상화폐시장에 참여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작은 데 비해 위험은 크기 때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상통화를 이용한 자금세탁 흔적이 발견되면 계좌를 빌려준 은행도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가 커졌다"며 "다른 은행에 비해 가상화폐에서 얻는 수익이 크지 않은 신한은행은 발을 빼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NH농협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다른 은행들은 당국의 가이드라인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시중은행의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날 오후 실명확인 입출금 서비스 도입을 준비 중인 6개 시중은행(신한 농협 국민 하나 기업 광주) 실무자와 팀장급 회의를 소집해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1월 중 실명제 시스템을 예정대로 도입한다는 기존 방침에 변함없다"며 "당국이 은행들의 거래를 다 막도록 한다는 소문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혼란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장기적으로는 거래소 폐쇄를 준비하면서 그때까지 '미봉책'으로 계좌실명전환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가상화폐시장이 없어질 거라면 비용을 들여 실명계좌 시스템을 설치하는 것보다 이 시점에 손을 떼는 게 이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관된 지침 없이 오락가락하자 일선 은행에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11일 법무부의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 기자회견과 청와대의 번복으로 혼란을 겪으면서 기업·신한 등 일부 은행에서 '손을 떼야겠다'는 말이 내부적으로 나왔다"며 "이번 회의는 은행권 혼란을 진화하기 위한 실무자 회의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당국이 가상계좌 본인 확인 강화 및 실명계좌 연결 등 후속 조치 지침을 서둘러 내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당국과 업계가 수개월간 조율해 자율규제안까지 마련한 상황인데도 정작 정부는 '거래소 폐쇄' 등 자극적인 언어만 쏟아낼 뿐 실질적인 규제에는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실명제 시행과 관련해 15일, 22일 등 여러 날짜는 거론돼 왔지만 아직 명확한 지침이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 입만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NH농협은행 측은 "당장 가상계좌 입금 금지(폐지)나 실명제 도입 철회를 검토한 바는 없다"면서도 "정부 방침에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농협은행은 빗썸 코인원 등 국내 대형 가상화폐 거래소들과 제휴해 가상계좌 발급 및 실명제 전환 서비스를 개발해왔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실명제 시스템 준비는 완료됐지만 당국의 가이드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당국은 9일 농협 신한 국민 등 6개 은행에 대한 가상계좌 발급 현장점검 1차 조사에 나섰고, 이날 일부 은행에 대해 2차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국의 가상계좌 현장점검과 관련해 향후 자금세탁방지 의무 이행 여부가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지 금융정보분석원(FIU)과 금융감독원이 강도 높게 들여다보고 있다"며 "일부 은행이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
[이승윤 기자 / 김종훈 기자 / 정주원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