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 신년기획 블록체인 강국으로 가자 ① ◆
미국 대형 할인점 월마트는 최근 IBM과 공동으로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을 적용한 식품 이력 추적시스템을 개발해 테스트하고 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문제가 있는 식품이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납품됐는지 확인하는 데 이전에는 꼬박 일주일이 걸렸지만 새 시스템으로는 2.2초면 충분했다. 유통업체의 생명과도 같은 상품 품질관리 측면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네트워크 거래에 보안과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덕분에 모든 거래에 걸리는 시간을 거의 실시간으로 단축했기 때문이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비즈니스 발굴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관련 기술 개발과 신사업 창출을 위한 경쟁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새로운 부의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블록체인에 대한 관심이 1990년대 말 인터넷 붐과 비슷해 '제2의 인터넷 혁명'이라고 부른다.
벤처캐피털업체 DFJ의 팀 드라이퍼 회장은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2017년이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의 해였다면 2018년은 블록체인의 해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비즈니스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와 대기업들은 블록체인 비즈니스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가장 발 빠른 쪽은 역시 미국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지난달 블록체인 기반 사이버 보안 연구가 포함된 약 7000억달러에 달하는 군사비 지출 법안을 승인했다. 블록체인으로 IT와 사이버 보안 시스템을 현대화한다는 계획이다. 두바이는 2020년까지 전체 정부를 블록체인으로 운영하는 야심 찬 목표를 발표했으며, 에스토니아는 세계 최초로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주민등록제도와 전자투표 시행을 예고했다.
심지어 비트코인 거래를 금지하고 있는 중국에서조차 블록체인 비즈니스는 적극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블록체인 식품안전연합회'를 구성해 식품 유통망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할인마트에 납품된 돼지가 어디서 키워졌고, 어떻게 도축돼 어떤 경로로 매장에 들어왔는지 쉽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식품 안전에 대한 우려가 전 국민적 관심사인 중국에서 블록체인을 통한 신뢰 높이기에 나섰다는 평가다.
글로벌 기업 중에서는 도요타가 MIT 미디어랩과 공동으로 자동차 운행 데이터를 블록체인으로 저장하고 공유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한때 IT 거인이었으나 지금은 구글, 애플, 아마존 등에 주도권을 내준 IBM, 오라클, 월마트 등도 블록체인을 통해 전세 역전을 시도하고 있다. 클라우드 시장점유율이 2%에 불과한 오라클은 블록체인 클라우드 서비스를 지난해 10월 선제적으로 내놓고 반격을 노리고 있다. IBM은 블록체인을 '넥스트 인공지능(왓슨)'으로 보고 현재 관련 프로젝트 600개를 진행 중이다.
반면 한국은 블록체인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이 없다. 외국에서는 한국이 블록체인을 규제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관련 투자도 한국이 아닌 일본, 두바이 등으로 몰려가고 인재들도 외국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국부 창출을 위한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시장조사 전문기관 CB인사이트가 발행한 '블록체인 투자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블록체인 기반 비즈니스는 헬스케어, 사물인터넷, 핀테크, 투표시스템 등 각기 다른 25개 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스타트업 95개가 벤처캐피털에서 펀딩을 받아 급성장 중이다. 이 리스트는 평균 300만~850만달러를 투자받은 검증된 기업들이다.
■ <용어 설명>
▷ 블록체인(Blockchain) : 네트워크 내에서 공동으로 거래 정보를 검증하고 기록·보관해서 공인된 제3자 없이도 신뢰성을 확보하게 해주는 기술이다. 거래 내용이 변동되면 거래 참여자 전원에게 공개되고 장부에 반영되기 때문에 안전하고 투명한 거래가 보장된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서울 = 오찬종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