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주회사 된 지주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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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만난 A그룹 고위 임원은 이달 국회에서 지주사 요건을 강화하는 공정거래법 논의가 예고되자 답답함부터 토로했다. 이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주요 그룹들은 또다시 계열사 지분을 사느라 현금 '곳간'을 열거나 주식 교환(스왑)과 같은 '묘수'를 짜내야 한다. 또 다른 그룹의 한 임원은 "기업 성장을 위해 써야 할 돈이 지주사 요건 맞추기를 위한 재무적 투자에 너무 많이 들어간다"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 곳들은 규제가 많은 반면 오히려 포기한 그룹들은 별다른 규제가 없어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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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주사 요건을 대폭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SK그룹은 6조원가량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가 내리는 6일 오후 SK그룹 직원들이 우산을 쓰고 서린동 사옥 앞을 지나가고 있다. [한주형 기자] |
LG(2003년), GS(2004년)에 이어 2007년 SK가 당시 정치권 의도대로 지주사로 전환했지만 나머지 그룹들은 참여하지 않았다. 오너의 지분이 적은 상태에서 해당 요건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참여가 지지부진하자 정부는 지주사 문턱을 낮추기에 이른다. 시행 3년 만인 2007년에 자회사 요건은 완화(상장사 30→20%, 비상장사 50→40%)됐고 지주사 부채비율 상한선도 100%에서 200%로 올렸다. 이것이 현행 지주사 요건이다. 그러나 이 요건도 주요 그룹들에는 맞추기 벅차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다. 대표적인 곳이 SK다.
매일경제신문 분석에 따르면 SK는 2004년 이후 SK에너지(현 SK이노베이션) 지분율 확보를 위해 4조8330억원을 썼다. SK C&C는 1조4460억원 규모 SK 주식을 사들였다. 2015년 SK와 SK C&C를 합병해 정상적 지주사로 가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SK는 지주사 전환과 함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야 했는데 이를 위해 2009년 11월 SK C&C를 상장했다. SK와 SK C&C를 합병해 '최태원 회장→SK C&C→SK'로 이어지는 '옥상옥' 구조를 해소했다.
SK는 또 다른 핵심 자회사 SK텔레콤 지분도 확보해야 했고 여기에 6530억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SK는 통신(SK텔레콤 지분 25.2%), 정유·화학(SK이노베이션 33.4%)을 축으로 하는 지주사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지주사 요건을 대폭 강화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지주사 체제를 갖춘 그룹들은 향후 13조3475억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이 중 절반 가량(6조1738억원)이 SK 몫이다. 유독 비용 부담이 많은 것은 반도체 호황에 따라 올 들어 사상 최고 실적을 내고 있는 SK하이닉스의 지분 가치가 높아 매입 비용이 커졌기 때문이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지분 10%가량을 사들여야 하는데 이에 따른 비용만 5조원이 넘는다.
다만 SK 측은 이 같은 부담은 현재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올 6월 말 기준 SK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6조8600억원으로 비용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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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그룹 지주사 현대로보틱스도 현행 '20% 요건'에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현대중공업, 현대건설기계, 현대일렉트릭 지분이 각각 6.63%씩 포인트가 모자란다. 연내 지주사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6803억원이 필요하다. 만약 이들 지분율을 30%까지 높이라고 한다면 부담은 1조7063억원까지 확대된다. 그룹별로 지주사 준비 상황은 다르지만 막대한 자금을 이미 투입했거나 향후 이를 짊어져야 할 판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주사 지분율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것은 기업들의 자발적 투자와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고
[문일호 기자 / 윤진호 기자 / 정우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