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택시장 '미다스의 손' 박창민 대우건설 사장
지난 27일 서울 광화문 대우건설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박 사장은 "사실 이번 '제21회 살기좋은 아파트' 선발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기 위해 승부수를 걸었다"고 털어놨다. 수도권 신규 택지 공급이 사실상 중단된 현 상황에서 건설사에 재개발·재건축은 가장 수익성 높고 리스크가 적은 사업이다. 주요 건설사들이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 구도심에서 수주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박 사장은 "고령화가 진행되는 동시에 인구 증가세가 꺾이고 있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재개발·재건축만큼 사업성이 좋은 분야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 강남 재건축은 수익성도 수익성이지만 상징성이 뛰어난 지역이다. 메이저 건설사들이 명예를 걸고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놓으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대림산업 '아크로', 현대건설 'The H'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강남 지역은 대림산업 삼성물산 현대건설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가 아니면 발을 내딛기조차 힘들 정도로 진입장벽이 높아졌다.
대우건설은 그동안 강남 재건축 수주전에서 다소 뒤처졌던 것이 사실이다. 주택 시장에 고급화 바람이 불던 2000년대 후반 모회사였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경영난에 처한 탓에 아무런 영업도 하지 못하고 경쟁사들이 재건축 시장을 선점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산업은행이 인수한 후 회사 경영이 정상화되자 비로소 강남 시장 탈환을 꿈꾸며 절치부심하고 있다.
올해 대우건설의 '서초 푸르지오 써밋' 대통령상 수상은 푸르지오 써밋이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할 전망이다. 대우건설이 '살기좋은 아파트'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2005년 길음뉴타운 대우푸르지오 이후 12년 만이며 프리미엄 브랜드인 '푸르지오 써밋'이 출범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박 사장은 "대우건설이 뛰어난 시공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강남 수요자들에게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서초 푸르지오 써밋'을 지으면서 스카이브리지에 특히 신경을 썼다. 스카이브리지는 지표면과 접촉 없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말하는데 주로 건물과 건물 사이에 놓인 다리를 뜻한다. 지진 에너지를 흡수해 구조물에 전달되는 충격을 감소시켜주는 면진 장치를 적용하고 대우건설 기술연구소에서 풍하중 실험을 진행해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게 했다. 그는 "스카이브리지는 기술과 비용이 많이 소요돼 주로 고급 건축물에 적용된다"며 "26층 높이에 스카이브리지가 설치된 '서초 푸르지오 써밋'은 일대의 랜드마크 주거시설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박 사장이 지난해 8월 대우건설 사장에 취임한 이후 지금까지 행보를 살펴보면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된다. 그동안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수주 경쟁에 나선 탓에 부실 사업장이 급증한 게 대우건설이 처한 가장 큰 문제라고 봤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 등 주요 해외 사업장들이 모두 적자 상태였다. 부실 사업장을 모두 정리하고 기존 14개 본부조직을 11개로 축소해 본사 인원을 줄였다.
"정확히 사업 내용을 판단하지 않고 너무 판을 벌인 것이 문제였지요. 철저히 전략 기획 단계에서 사업 착수 여부를 판단해 불필요한 매출 40%를 줄이라고 지시했습니다."
무조건 비용 절감에만 나선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3월 있었던 과천 주공1단지 수주전이다. 현대건설, GS건설 등 국내 최고의 건설사들과 맞붙어서 승리했다. 시공사 선정 직전에 박 사장이 직접 조합 사무실을 방문하는 등 정성을 쏟고 적극성을 보인 영향이 컸다. 과천은 전국에서 서울 강남구·서초구 다음으로 집값이 비싼 지역인데 아파트가 노후화하면서 주공8·9단지 등 대규모 단지가 줄지어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과천 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과천 시장 전체를 고려할 때 전략적 중요성이 크다고 봤다.
해외에서는 베트남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인구 구조상 젊은이 비중이 높고 베트남 경제가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은 10년 전부터 베트남 수도 하노이 근방에서 기본 용지를 조성하고 직접 시공하는 신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작년에 베트남 현지에서 시공법인을 세워 1차적으로 빌라 분양을 실시했고 후속 사업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 분양도 진행할 예정이다.
굴지의 국내 금융사와 리츠 운용사가 이 프로젝트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하기 위해 협의 중이다. 하반기부터 베트남 사업 성과가 본격적으로 대우건설 실적에 잡힐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주택사업도 대우건설이 기대를 모으고 있는 해외 현장이다. 대우건설 컨소시엄은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신도시 사업의 기본계획(마스터플랜) 수립 발표회를 개최했다. 사우디 정부와 대우건설·한화건설·SAPAC 컨소시엄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이 사업은 수도인 리야드 공항에서 동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분당신도시 2배 규모의 '다흐야 알푸르산 신도시'를 건설하는 공사다. 전체 사업비 규모는 200억달러(약 23조원) 내외로 추정된다. 사업 추진을 위한 세부 사항이 확정되면 국내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외건설 수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독불장군식으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대우건설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젊은 직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일이다. 실제로 박 사장의 스케줄표는 현장 방문 일정으로 빼곡하다. 전국 어디에서 견본주택이 열리더라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 직원들과 대화한다. 본사에 있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사원·대리급과 대화의 시간을 갖는다.
특히 회사의 20~30년 뒤 미래 청사진을 그리는 일을 아예 젊은 직원에게 맡겼다. 대리급 7명으로 구성된 챌린지팀을 구성한 것이다. 이들은 광화문 본사로 출근하지 않는다. 마포구 합정역 딜라이트 상가에 별도의 사무실을 마련했다. 윗선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로지 회사의 미래 비전을 수립하는 일에만 전념하라는 뜻이다.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분기별로 진행 상황을 보고한다.
"차장 이상의 직원은 오랜 근무로 생각이 경직되기 마련이죠. 아직 자유로운 사고가 가능한 젊은 직원들이 자신의 밥줄인 미래 먹거리를 스스로 발굴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미래 청사진을 수립했을 때 가장 큰 수혜를 입는 사람은 결국 자신들이거든요."
젊은 직원의 의견 수렴 노력은 애사심 증가와 업무 성과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정비사업 수주는 직원들이 직접 뛰는 게 중요한데 대우건설 직원들은 일당백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대우건설 직원들은 정비사업 용역업체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 조합원 등 고객 질문에 직접 대응하고 있다. 이들의 자신감 있는 모습은 외부 신뢰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앞으로 대우건설 전망이 장밋빛 일색인 것은 아니다. 최근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중단된 것이 대우건설 실적의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건설사 중에서 주계약 업체로서 시공 경험이 있는 곳은 현대건설과 대우건설뿐이다. 국내 최초로 핵 폐기물 처리장을 수주한 것도 대우건설이다. 박 사장은 "원전이 중단되면 원전 관련 대우건설의 기술력도 사장될 수밖에 없다"며 "ISO9001·14000 국제협회 인증도 계속해서 받아오고 투자도 아끼지 않았는데 이 같은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택 시장 흐름을 가장 정확히 읽는 전문가로도 유명한 박 사장은 일반인의 재테크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택 시장은 앞으로도 꾸준히 상승세를 탈 것 같습니다. 교통이 좋고 기존 인프라가 잘돼 있는 지역의 집값은 계속 오를 겁니다. 재개발·재건축이 투자 대상으로 가장 좋다고 봅니다. 자금 여력이 부족한 젊은 사람들은 오피스텔 중에서 투자 대상을 물색해보는 게 좋겠습니다."
△1952년 마산 출생 △마산고, 울산대 건축공학과, 중앙대 건설대학원 석사 △1979년 현대산업개발 입사 △2001년 현대산업개발 이사대우 △2011~2014년 현대산업개발 대표이사 △2012~2016년 9·10대 한국주택협회 회장 △2016년 8월~ 대우건설 대표이사
[용환진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