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가계부채 리스크 관리를 위해 제시한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목표 때문에 주요 시중은행들이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금융위원회는 분할상환 대출구조를 정착시키겠다는 취지로 올해 연말까지 분할상환 대출비중 목표치를 당초 50%에서 55%로 상향조정 했지만 시중은행들은 사실상 이같은 숫자를 달성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이 시장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정지도를 하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담대 분할상황에 대한 행정지도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경우 공식적인 규제는 없지만 시중 은행들로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볼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다음달로 예정된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앞두고 최근 취임한 최종구 신임 금융위원장이 어떤 정책을 내놓을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4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 5월말 기준 신한, 국민,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비거치식 분할상환대출 비중이 전체 주택담보대출에서 47.8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 비중을 올 연말까지 50%로 확대할 방침이었으나 가계부채 리스크가 커지자 55%로 상향 조정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2015년말 분할상환 비중이 40%초반이었는데 1년 6개월만에 40%후반대까지 끌어올렸다"며 "앞으로 남은 6개월 동안 5%포인트 이상 더 끌어올리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올해 연말 주담대 분할상환 목표치는 50%였으나 지난해 12월에 금융당국이 이를 5%포인트 상향 조정했고 이 과정에서 은행권과 금융당국 간 구체적인 의견교류도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6년 목표치가 45%였던 것과 비교해 1년 만에 10%포인트 오른 셈이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원금상환구조를 일시상환에서 분할상환으로 변경해 가계부채의 질적 개선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분할상환은 매월 일정 부분의 원금을 상환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이자는 상환할 수 있으나 원금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대출금액을 줄이거나 대출자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분할상환은 투기적 대출수요를 제약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시중 은행들이 분할상환 비중을 단시간내에 끌어올리는데는 한계가 있다. 대출 특성상 전세자금대출, 집단대출(이주비대출,중도금대출)처럼 분할상환이 안되는 대출이 있는 데다 일시상환 대출을 선호하는 대출자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주택구매와 같이 대출금 규모가 큰 차입자, 소득변동성이 큰 차입자, 안정적으로 투자재원을 확보해야 하는 차입자들은 일시상환 대출을 선호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이같은 대출자를 설득해 분할상환을 유도할만한 유인책도 마땅히 없다. 비거치식 분할상환을 택하는 경우는 우대금리가 0.1%포인트 정도 도에 불과한 상황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재무상황이 양호하지 못한 대출자가 주로 일시상환을 선택한다는 것도 문제"라며 "금융당국이 분할상환을 유도하면 이들이 은행권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분할상환 비중을 무리하게 높일 경우 일종의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임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이 발표한 '주택담보대출 원금상환구조 결정요인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가 많거나 소득이 불안정하고, 신용등급이 낮은 경우에 일시상환 대출을 받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 신용등급이 높은 1등급과 2등급은 분할상환 비중이 35% 수준이지만, 이후 점차 낮아져 3~6등급에서는 32~33%수준으로 낮아진다. 임진 연구위원은 "정부의 분할상환 정책으로 은행권 우량차주에 대한 대출건전성은 개선됐지만 비우량고객의 경우 제2금융권으로의 이동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일부 은행들은 분할 상환 유도 전략이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윤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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