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식시장에서 정보기술(IT)주 지수가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시대 최고 기록을 넘어서는 신기원을 열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 IT업종 지수는 9일 연속 상승한 끝에 992.29를 기록했다. 닷컴 버블이 정점에 섰던 2000년 3월 27일의 대기록(988.49)을 무려 17년 4개월만에 갈아치운 것이다.
S&P500을 구성하는 11개 섹터 가운데 IT업종은 올해 23% 가량 올라 단연 최고의 상승세다. S&P500 IT업종 지수는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보다 상승 속도가 더뎠다. 올해 최고의 주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아마존닷컴과 넷플릭스 등이 IT업종 구성종목에서 빠져 있고, IBM 등 무거운 종목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나스닥은 올해 들어 벌써 40번이나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IT주가 고평가 영역에 들어섰다는 일각의 우려에도 S&P IT업종 지수까지 신기록을 쓰면서 "닷컴 버블 붕괴의 악몽은 잊어라"는 긍정론이 쏟아져 나왔다. 하워드 실버블랫 S&P다우존스지수 인덱스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아버지 시대의 시장이 아니다"라며 "(기업)이익은 그 때보다 훨씬 더 공고하다"고 진단했다.
버블 붕괴로 S&P500 IT업종이 수개월만에 주가 상승분의 80%를 날렸던 2000년 당시엔 시스코, 마이크로소프트(MS), 인텔, 오라클, IBM 등이 시가총액 상위였으나 지금은 대장주 애플을 비롯해 알파벳, MS, 페이스북, 비자 순으로 면면이 크게 바뀐 상태다. 또 S&P500 IT업종의 올해 실적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9.4배로 2000년 1분기의 73배에 비하면 훨씬 낮은 상태로 분석됐다.
미국 기술주들의 고공 행진은 국내 IT·반도체 업황은 물론 한국 증시에도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발 훈풍으로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1.9포인트(0.49%) 오른 2441.84로 마감했다. 6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2440선을 돌파한 것이다. 삼성전자는 전날보다 2만3000원(0.91%) 오른 256만원을 기록했다. 연일 사상 최고가를 새로 쓰고 있는 코스피 시장을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한 전기전자 업종이 주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증시도 기술주가 선봉에 서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지난 달까지 코스피와 S&P500은 각각 7개월, 8개월 연속 상승세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전기전자 업종 지수는 연초 대비 42% 이상 상승했다. IT주를 공통분모로 삼아 한미 증시가 '커플링(동조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특히 미국 기술주 동향은 글로벌 IT·반도체 경기를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작용하는 데다 전 세계적으로 IT업종 전체 이익 추정치가 다른 업종 대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한국투자증권에 따르면 국내 IT업종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은 한달 전에 비해 4.5% 증가해 2위인 금융 업종(1.6%)과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다. EPS는 순이익을 주식수로 나눈 값으로 증가할수록 경영 실적이 양호하다는 의미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 2000년과 최근 흐름을 보면 미국 기술주와 국내 반도체·IT업황이 높은 연관성을 나타내며 움직이고 있다"며 "미국 기술주 강세를 통해 글로벌 IT경기 호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영우 SK증권 연구원은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수요가 폭발하면서 반도체 설비투자의 슈퍼사이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며 "관련 종목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내와 미국 기술주들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추세적인 동조화를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대종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기술주들은 소프트웨어 중심의 IT기업들이 주를 이루는 반면 우리는 하드웨어 기업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며 "국내 IT·반도체 업황 호조는 올 3분기까지로 전망한다"고 신중론을 제시했다.
실제로 LG디스플레이의
[신헌철 기자 /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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