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이탈리아 로마, 우간다 캄팔라로 이어지는 일주일여의 해외출장 기간 중 그는 새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이 될 수도 있다는 언질을 받았다. 하마평만으로도 영광스러웠지만 가슴 한쪽에는 부담감이 가득했다. 한국 경제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가계부채와 구조조정 이슈를 주도해야 하는 금융위원장이라는 자리가 엄중한 부담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틀여간 밤잠을 설쳤고 3일 문재인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으로 최종 낙점을 받았다.
금융위원장으로 지명된 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최 행장은 "주변 관심이 너무 과해서 부끄러워하고 있다"며 "능력 위주 인사로 국민과 시장에 최고의 정책을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두겠다"는 답변을 내놨다.
3일 위원장 지명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가계부채와 관련해 소득증대 정책을 포함한 종합적 접근을 강조했다. 금융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얘기였다. 최 후보자 측근은 "최 후보자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가의 보도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범부처 차원의 종합적인 접근을 남달리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 구로구 개봉동 셋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해 지금은 서울 송파구 중형 아파트에 살고 있는 최 후보자는 가계부채 관리와 서민금융을 한 묶음으로 생각한다. 최 후보자는 "사무관 시절 재정경재부 이재국 중소금융과와 산업금융과에서 중소기업 보증이나 서민금융 업무를 주로 했고 금융위 상임위원 때도 미소금융이나 새희망홀씨 대출 같은 서민금융 심의·의결 업무를 많이 했다"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코스트(비용)가 들더라도 적극적인 스탠스(자세)를 취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당사자의 고통 분담을 전제로 한 시장주도형 구조조정이라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금융권은 최 후보자에 대해 남다른 기대감을 내비치고 있다. 국제협상가 출신다운 그의 조율 능력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오세현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1실 대우조선해양 담당 팀장은 "최 후보자가 수은 행장으로서 끊어줄 때는 확실히 끊어주다가도 한 명의 어른으로서 날선 상황을 부드럽게 조율하고, 조율된 부분에 대해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강하게 밀어붙이는 등 강단을 보여준 덕에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안이 비교적 매끄럽게 채권단 내 합의로 이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금융위 고위 관료는 "합의될 때까지는 간이며 쓸개며 다 빼줄 것처럼 부드럽게 나오다가도 일단 합의가 된 사안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하는 것을 배격하고 중심을 지켰다"고 했다.
최 후보자의 강온양면 리더십은 1982년 공직에 입문한 이래 관가의 대표적 '흙수저 모피아'로 35년간 겪은 다양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최 후보자가 공직생활 대부분을 보낸 재정경제부 이재국과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은 엘리트가 즐비한 정부 중앙부처 내에서도 손꼽히는 인재들이 모인 곳이다. 행정고시 합격 후 그는 육군 102보충대에서 훈련을 받고 102보충대에서 소위 '돈 없고 빽(배경의 속어) 없는' 이들만 간다는 강원도 홍천 11사단, 일명 '젓가락부대'로 배치된다. 보직은 중화기중대 박격포병. 육군 현역병 사이에서 보기 드문 명문대(고려대 무역학과) 출신이자 고등고시 합격자에 대한 대접(?)은 일절 없었다.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과 은성수 한국투자공사 사장, 김성욱 뉴욕재경관 등 최 후보자의 국제금융라인 선후배들은 모두 행정고시 수석 출신이다. "나 빼고 전부 수석"이라는 최 후보자의 습관적 논평은 자조보다 자부에 가깝다. 언뜻 보면 화려한 이력의 선후배들은 냉엄한 국제 금융 관가에서 '국제적 을(乙)'로서 강대국의 새파란 젊은 관료들을 상대로 눈물겨운 경제외교를 벌여야 했다. ('국제적 을'이라는 표현은 실제 국제 금융통들이 쓰는 더욱 절망적인 표현을 기자가 순화한 것이다.) 최 후보자는 2007년 후배 사무관·주무관들에게 '가장 닮고 싶은 상사'에 뽑힌 적도 있을 정도로 관가에서 동료 간 신망이 두텁다. 2011년 10월 19일 700억달러 규모의 한일 통화스왑, 같은 달 26일 560억달러의 한중 통화스왑 체결은 군대개미와도 같은 국제금융라인들의 역량을 결집한 당시 최종구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급)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최종구 차관보 밑에서 국제금융국장을 역임하며 통화스왑 업무를 함께 한 은 사장은 "그 양반이 당시 일본 재무차관, 중국 재무차관들과 워낙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 맺어놔서 통화스왑하는 데 일이 쉽게 풀렸다"며 "공명심으로 '내가 했다' 할 수 있는데 '은성수 국장이 애를 썼다'고 격려해준 사람이 바로 최종구"라고 회고했다. 당시 무디스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까지 올렸는데 최 차관보가 "신용등급이 올라가면 국장이 발표하고 떨어지면 내가 총대를 메겠다"고 한 일화도 유명하다.
하지만 흙수저 모피아의 영광은 거기서 멈췄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이후 물망에 오르던 1차관 등극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준관료 격인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생활도 잠시. 후배(진웅섭 정책금융공사 사장)가 금융감독원장으로 오면서 야인생활을 해야 했다. 1년가량 공백기를 거쳐 SGI서울보증 대표로 선임됐고 묵묵히 준국책금융기관인 SGI보증보험 실무를 챙겼다. 뜻하지 않게 공직자 대열에 재합류하게 된 것은 이덕훈 전 행장의 후임 수출입은행장이 되면서다. 당시 2순위 후보자로 청와대에 추천된 최종구 사장에 대해 선후배 관료들의 천거가 이어졌다. 행장 취임 기념으로 접견한 강석훈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 행장에게 "행장님, 우리(청와대)가 협박받고 행장님 임명한 거 아시죠?"라고 농을 던졌다는 후문이다.
관가 안팎에서 두루 두터운 신임을 받는 최 후보자의 인품은 어려운 살림에도 예절과 노력을 강조했던 가풍 때문이라고 최 후보자 지인들은 전한다.
최 후보자 선친이자 서예가인 석운 최백규 선생은 굉장히 엄격한 교육을 시킨 것으로 강원도 강릉 일대에서 유명했다. 최 후보자 고향 친구인 최석영 전 주제네바 대사는 "최종구는 어떤 이슈를 판단할 때 인간적인 면을 굉장히 많이 본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나 친구들이 다 좋아한다"며 "운동을 좋아하고 같이 술 마시고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그렇게 인간적인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고위공직자가 많지 않은데 이런 부분이 최종구의 엄청난 에너지"라고 설명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김밥집을 운영하는 최 후보자의 넷째 형 종택 씨는 최 후보자의 인생을 "집념과 의지가 만들어낸 전화위복"으로 요약했다. 종택 씨는 어릴 적부터 최 후보자의 장기는 '축구'라고 귀띔했다. 그는 "축구 실력으로 타 부처들을 제압했던 재무부에서 축구부 주장을 맡을 정도로 축구실력이 수준급"이라며 "어릴 적부터 방과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특유의 근성으로 운동장을 누비면서 쌓은 실력"이라고 했다. 최 후보자와 강릉고 동기인 홍지인 전 주폴란드 대사도 "축구하는 스타일을 보면 기교보다는 힘으로 공을 차는 스타일"이라며 "뭘 해도 직선적으로 헤쳐나가는 스타일이지 기교를 부리거나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 신제윤·임종룡·은성수 등 금융관료 거미줄 인맥
최석영 대사·최선집 변호사와 강릉최씨 동갑내기 절친 3인방…나카오 ADB총재와 남다른 친분
↑ 1984년 팀스피리트 훈련 도중 동료와 함께. 왼쪽이 최종구 당시 육군 11사단 중화기중대 박격포병 병장. |
2014년 11월 당시 최종구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후배 원장(진웅섭 현 금감원장) 배려차 수석부원장직을 접자 변 전 국장과 윤 전 행장, 신 전 위원장, 임종룡 당시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선약을 모두 취소하고 위로주를 함께 나눴을 정도다. 이 자리에는 김석동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와도 가까운 사이인 김광수 법무법인 율촌 고문(전 금융정보분석원장)도 함께했다. 김 고문은 최 후보자와 호흡을 맞출 금감원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한중·한일 통화스왑 체결 등 국제 금융 현안을 함께 헤쳐나간 은성수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최 후보자가 가장 아끼는 후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위 현직 간부 중 유광열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손병두 금융위 상임위원 역시 기재부 국제금융·국제금융협력 라인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다.
최석영 전 주제네바대표부 대사와 최선집 김앤장 변호사는 최 후보자와 함께 강원도 3대 명문인 강릉고 동기동창이자 강릉 최씨 가문인 동갑내기 절친 3인방이다. 최 전 대사는 2011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내 비준 실무 작업이 한창일 때 외교부 FTA 교섭 대표로서 당시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과 '실과 바늘'처럼 찰떡궁합 합동작전을 수행했다.강원도 출신 서울 유학생들이 머무르는 서울 신림동 강원학사에서 함께 지낸 특별한 관계이기도 하다.
세정(稅政) 전문가인 최선집 변호사는 대한변호사협회 세제위원을 거쳐 중견기업연합회 대외협력부회장을 맡고 있는 관료 출신 변호사다.
국제금융통 관료 출신답게 해외 금융권 거물들과도 최 후보자는 남다른 친분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나카오 다케히코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다. 최 후보자의 기재부 후배 관료는 "ADB 총재 정도면 어깨에 힘도 들어갈 법한데 과거 카운터파트를 한 최 후보자와 친구같이 지내고 있다"며 "나카오 총재뿐 아니라 미국, 일본, 중국 차관·차관보 출신 인물들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료는 "최 후보자가 가진 미국, 중국, 일본 네트워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큰 자산"이라고 덧붙였다.
■ 최종구 금융위원장 후보자는
△1957년 강원도 강릉 출생 △강릉고, 고려대 무역학과, 미국 위스콘신대 공공정책학 석사 △행정고시 25회 △재정경제부 이재국 산업금융과 중소금융과 사무관 △1999년 12월 재경부 산업경제과장 △2001년 5월 외화자금과장 △2002년 9월 국제금융과장 △2008년 3월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2009년 2
[정석우 기자 / 김종훈 기자 / 노승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