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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신용협동조합 선구자 추모식이 열린 대전 신협 연수원.
일반인에게 낯선 시 한 구절이 나지막이 울려퍼졌다. 문철상 신협 중앙회장이 선구자인 고(故) 장대익 신부, 고(故)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를 추모하기 위해 쓴 시('님은 우리에게 함께하라 하셨지요')였다. 문 회장은 등단 시인이다. 2011년 '계간문예'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뒤 2014년 시집 '싸락눈'을 펴냈다.
전국 600만명의 조합원과 자산 76조원(2017년 3월 말 기준)을 관리하는 금융사 수장의 취미치고는 상당히 감성적이다.
그는 동시에 사진작가다. 1986년 작가로 등단한 뒤 군산대 사진학과에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칠 정도로 갈고닦은 실력을 인정받았다. 앞서 1991년과 2003년 두 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신협 수장에 오른 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면서 사진기를 잠시 놓아야 했지만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열망만큼은 여전하다.
문 회장은 매일경제신문과 인터뷰하면서 "얼마 전 카메라를 장만했다. 라이카(카메라 업체)에서 캐논을 잡으려고 내놓은 카메라인데 26~400㎜까지 줌인이 되는 데다 아주 가볍고 성능도 좋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의 눈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반짝거렸다.
문 회장은 예술가 기질이 물씬 풍기는 취미생활을 갖게 된 원천으로 대학 시절 응용미술을 전공하면서 키운 심미안과 함께 독서를 꼽았다. 그는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셔서 집에 큰 서재가 있었다. 건물 관리를 부탁받았던 외가 건물에 책방이 세를 들었고, 잠시 몸을 의탁했던 외숙모댁에서도 서재를 방으로 사용했다"며 "자연스럽게 책과 가까워질 기회가 많아지면서 독서량이 많아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4년 신협 회장에 취임한 후 조직 내부에도 인문학적·문화적 소양 쌓기를 강조하고 있다. 신협은 10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 매 5년 단위로 감사패와 함께 책을 선물한다.
그는 "우스갯소리지만 독후감 쓰는 사람에게 차기 진급에 반영하겠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독서를 강조한다"고 말했다. 신협 방송국을 개설해 조합원들과 중앙회 임직원이 문화적으로 풍요로운 회사생활을 하게끔 만드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금도 문 회장이 취임한 이후 설치된 라디오 방송국은 아침에는 행진곡, 점심에는 영화음악, 저녁에는 클래식을 내보내고 있다.
교육을 통한 인재 육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한 예로 신협은 신협 조직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나다의 코디 연구소에 매년 연수자를 파견한다. 국내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직원에게는 등록금의 70%를 지원하고 있다.
켜켜이 쌓아올린 인문학 자산을 바탕으로 '사람 냄새 나는 신협'을 만들겠다는 게 문 회장의 포부다. 특히 신협의 본업인 금융 영역에서도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금융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문 회장의 지론이다.
문 회장은 "은행을 흉내 내는 담보대출보다 신용대출을 열심히 할 것"이라며 "지역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서로 힘을 모은다는 초창기 신협 정신으로 돌아가 담보가 없거나 다른 기관에서 대출을 받기 힘든 서민을 위해 신협이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햇살론과 사잇돌 등 정책 서민 금융상품 취급을 확대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따뜻한 금융에 대한 지론을 바탕으로 그는 2015년 신협사회공헌재단을 발족했다. 신협사회공헌재단은 신협 임직원 기부금만으로 운영되는 대한민국 최초의 기부협동조합으로 '착한 금융, 좋은 신협'을 모토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잘살기 위한 경제운동' '사회를 밝힐 교육운동' '더불어 사는 윤리운동' 등 취약계층의 자활과 아동·청년학생 멘토링 사업, 국내외 봉사활동 등을 추진해 경제부총리상을 수상했다.
지역 곳곳에 자리 잡은 조합을 바탕으로 한 신협과 봉사활동으로 지역주민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사회공헌재단은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내고 있다. 신협사회공헌재단의 의료봉사를 계기로 지리산 중턱에 위치한 작은 산골 동네인 운봉마을과 남원 온누리신협이 맺은 인연은 대표적인 사례다.
문 회장은 "사회공헌재단이 운봉마을에 4박5일 한방 의료봉사를 다녀간 뒤 한 달 만에 마을 주민들이 몰리면서 온누리신협의 예금액이 10억원 늘어났는데 도시로 치면 이는 몇백억 원의 가치가 있는 돈"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한방 치료를 받은 사람들이 계 모임을 만들어 해외여행을 다니면서 주민들 간 관계도 돈독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협동조합을 통해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 취약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이런 가능성 때문에 앞으로 협동조합을 육성해 조합의 공적인 역할을 더욱 키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협동조합청 설립 △협동조합육성기금 조성 △신협 산하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설립 △서민신용보증기금 설치를 주장했다.
가장 시급한 과제로는 협동조합 정책의 종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협동조합청' 설립을 꼽았다. 문 회장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후 1만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설립됐지만 이 가운데 55.5%만이 실제 활동하고 있다"며 "현재 기획재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이 나눠 맡은 협동조합 정책을 통합적으로 개발·집행할 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협동조합육성기금'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정상적으로 운영이 힘든 협동조합을 지원하기 위한 방책이다.
문 회장은 "협동조합의 선진국인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는 협동조합만을 위한 기금을 설치·운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부와 지자체, 신협 등의 금융협동조합이 공동으로 출연해 기금을 조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높은 진입장벽을 완화해 신협 산하에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하면 고령화와 인구절벽 등의 국가가 직면한 사회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게 문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취약계층에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의료복지를 민간 의료기관이 모두 담당하기는 어렵다"고 꼬집었다. 이어 "신협 조합원과 자원을 활용해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권역별로 설립한다면 지역주민 중심으로 의료복지 체계를 혁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서민신용보증기금을 설치해 금융 사각지대로 꼽히는 서민층에 대출을 공급해줄 수 있다"며 "특히 관계형 금융기관의 강점을 활용해 대상자의 자활 의지나 가족관계 등 정성적 평가를 통해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대출을 설계할 수 있어, 소득수준이나 신용등급이 낮아 대부 업체를 찾은 사람들도 낮은 금리에 대출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회장은 저신용자와 저소득층의 자활을 위한 금융·창업 지원 종합 서비스를 도입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그는 "사회적 약자층이 단위조합을 방문해 도움을 요청하면 자활 의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창업 지원 자금으로 300만원을 무이자로 받을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대출 이자는 전액 사회공헌재단에서 지원해주기 때문에 부담이
▶ He is…
△1951년 전북 김제 출생 △1990년 전주대 경영학 석사 △2011년 군산대 경영학 박사 △2002년 군산대건신협 상임이사장 △2004년 전북 신협협의회장 △2009년 신협중앙회 이사 △2014년~ 신협중앙회장 △2015년~ 세계신협협의회 이사 △2016년~ 아시아신협연합회 회장
[김종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