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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채납 토지 중 절반을 현금으로 납부하는 방식을 추진하는 이촌동 왕궁아파트. [사진 = 독자 제공] |
11일 왕궁맨션아파트 재건축조합 관계자는 "조합이 원하는 기부채납 방법과 서울시가 원하는 기부채납 방법이 달라 기부채납 대상 토지의 절반을 돈으로 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재건축 단지의 전용면적이 106.6㎡(32.3평)에서 118.8㎡(36평)로 늘어나는 대신 가구당 재건축 부담금이 수천만원 늘어나게 돼 다음달 30일께 용산구청이 주민설명회를 진행하고 같은 날 조합원 투표를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왕궁아파트 소유주는 서울시 재건축단지 관행에 따라 전체 용지의 15%(2640㎡)를 기부채납해야 하는데 이 중 절반인 7.5%(1320㎡)를 현물(토지) 대신 현금으로 내야 한다. 서울시는 왕궁아파트 용지 공시지가(3.3㎡당 2600만원)의 2배가량을 기부하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까지 재건축 아파트의 기부채납은 도로 용지·공원녹지 용지 등 토지나 어린이집·체육관 등 시설이 주를 이뤘다. 현금으로 전체 기부채납 대상 토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부채납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시 담당자는 "법령 개정 이후 아직까지 현금 납부 50%를 한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왕궁아파트 조합은 처음에 도로 용지와 공원녹지 용지를 기부하겠다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도로 용지 기부 제안에 대해서는 기존 도로를 넓힐 필요가 있다며 수용했지만 공원녹지 기부 제안은 거부했다. 기부채납된 공원녹지는 물론 이웃 주민에게도 개방되지만 사실상 해당 단지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만큼 공공성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인근 어린이집 시설이 부족하니 왕궁아파트 용지에 어린이집을 지어 기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선 조합이 난색을 표했다. 현재 왕궁아파트는 1~5층 5개 단지의 소규모인데 한강변 층수 규제에 따라 한강에 가장 가까운 동을 15층까지밖에 지을 수 없다. 총 3~4개 동을 건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린이집 건물을 별도로 짓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제3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금전 기부채납이다. 현재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행자는 기부채납의 50%까지를 부동산이 아닌 현금으로 납부할 수 있다. 왕궁아파트 재건축조합은 "당초 조합 제안대로 공원녹지 기부채납이 이뤄진다면 더욱 좋겠지만 서울시가 제안한 금전 기부채납도 나쁘지 않다"는 입장이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도 "요즘 중소형 아파트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촌동에서는 다소 큰 아파트의 인기도 높은 편"이라며 "바로 옆에 있는 래미안 첼리투스(렉스아파트 재건축)가 3.3㎡당 4000만~5000만원에 거래되는 만큼 전용면적이 12.2㎡가 늘어나는 대신 가구당 부담금이 수천만 원 늘어나는 것은 크게 불리한 조건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임종빈 왕궁맨션아파트 재건축조합장은 "전임 서울시장은 공원녹지 기부채납을 강조했는데 현재 서울시장은 공원녹지가 공공성이 부족하다고 하니 행정의 일관성이 부족한 것 같아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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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업계에서는 환영한다는 반응과 우려의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김세원 내외주건 이사는 "그동안 기부채납 대상이 토지 또는 시설로 한정돼 있어 융통성 있는 행정이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며 "작년 7월 법령 개정으로 공원신설 또는 도로확장이 불필요한 지역에서 기부채납을 금전으로 대신하게 한 것은 선택지가 다양해진다는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지자체는 공원 또는 시설 기부채납을 받은 뒤 관리책임을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며 "현금으로 기부를 받으면 이 같은 부담을 질 필요가 없어 향후 금전 기부채납이 남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했다. 가뜩이나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에 따른 부담이 큰 상황에서 금전 기부채납까지 더해지면 재건축 아파트 주민의 재정적인 부담도 과도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자체가 도로나 공원녹지를 기부채납 받는 취지는 재건축으로 늘어난 인구를 기존 인프라 시설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며 "왕궁아파트와 같이 1:1 재건축 아파트가 다른 단지와 마찬가지로 전체 용지의 15% 기부채납 의무
왕궁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다음달 용산구청이 주민설명회를 개최한 뒤 공람 절차를 거쳐 도시계획위원회 심사와 건축심의가 순차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임 조합장은 "내년 상반기쯤 관리처분 신청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환진 기자 /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