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할 경우 순작용보다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고 판단했다"며 "은행권 신탁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지만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불특정금전신탁은 금융사가 다수의 고객에게서 투자자금을 받아 주식·채권,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고객이 지정한 상품에 투자한 뒤 거둔 수익을 돌려주는 특정금전신탁과 달리 불특정금전신탁은 고객이 투자 상품을 지목하지 않고 은행이나 증권사 같은 신탁업자가 알아서 돈을 굴린 뒤 수익을 고객에게 되돌려준다. 증권사나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공모펀드와 유사한 형태를 띠지만 금융당국의 규제는 공모펀드보다 약해 투자 대상 선택과 운용이 더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어 수익률 면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은행권은 고객자산관리 강화 차원에서 2004년 간접투자자산운용업 도입과 함께 불특정금전신탁 취급이 금지된 이후 줄곧 불특정금전신탁 부활을 주장해 왔다.
A시중은행 관계자는 "불특정금전신탁이 허용되면 은행이 소액 투자자에게 좋은 투자형 상품을 제공할 수 있게 돼 더 많은 투자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제 자산운용사의 공모펀드 시장이 정착됐다는 점에서 업권 간 경쟁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은행권 불특정금전신탁이 허용될 경우, 공모펀드 고객 이탈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증권·자산운용업계는 결사 반대 입장을 견지해 왔다. 금융투자협회 관계자는 "불특정금전신탁은 펀드와 달리 사적 계약이기 때문에 공모펀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가 미미하고 이 때문에 자금운용도 유리하다"며 "이처럼 은행권에 불특정금전신탁을 통한 일임매매를 허용하게 되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펀드업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단 금융당국은 증권·자산운용사의 손을 들어줬다. 불특정금전신탁 불허의 가장 큰 이유로 불특정금전신탁이 규제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펀드는 증권사나 은행의 펀드 상품 판매, 자산운용사의 자금운용, 은행의 자금 수탁 관리라는 3개 축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은행권에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하면 은행이 3개 역할을 한꺼번에 맡아 '셀프 감시'를 하게 돼 제대로 된 규제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했을 때 과도한 '쏠림 현상'도 불허 이유로 꼽았다.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저금리 시대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을 은행권 불특정금전신탁이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수 있다"며 "규제가 약한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인 불특정금전신탁 투자 실패로 고객 피해가 확대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1990년대 말 100조원을 넘었던 불특정금전신탁이 IMF 구제금융 후폭풍으로 수익률이 곤두박질치면서 투자자들에게 심대한 손실을 안긴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 관계자는 "불특정금전신탁을 허용하되 투자자 보호 관련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며 "금융당국의 전향적인
■ <용어 설명>
▷ 불특정금전신탁 : 고객이 지정한 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특정금전신탁과 달리 은행이나 증권사 등 신탁업자가 주식·채권 등에 투자한 뒤 수익금을 되돌려주는 실적배당상품. 공모펀드와 유사한 형태지만 펀드보다 규제가 약함.
[배미정 기자 / 박윤예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