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진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여파로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빚을 내 투자하기보다 부채를 조정·관리하는 '디레버리징'에 더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21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삼성 LG 현대차 롯데 등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의 회사채(사모채 포함) 발행 규모가 전년 대비 10.2% 확 줄어들었다.
현재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2%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기업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지만 올 상반기 일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규모는 전체 29조4000억원으로 전년 32조7200억원에 비해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가 확연하다.
그룹별로도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상반기 3조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지만 올해 같은 기간 발행액이 7100억원에 그쳐 규모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LG그룹도 2조6400억원에서 1조2500억원으로 회사채 발행액이 반 토막 났다. GS그룹도 올해 상반기 84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했으나 지난해 상반기 발행액(1조5500억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낮은 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해도 그 이상의 투자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찾기 어려워 자금 조달이 위축된 것"이라며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기조를 활용해 기업들이 회사채 만기를 장기화하면서 발행 수요 자체가 줄어든 탓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기업 구조조정 이슈도 회사채 시장 위축에 영향을 줬다.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중공업그룹은 올해 들어 단 한 차례도 회사채를 발행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한 해 동안에만 2조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한 큰손이다.
지난해 회사채로 수천억 원을 조달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올해 발행이 없다.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은 계열사들의 발행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지난 5월 이후 발행이 막혔다.
2013년 이후 이어져온 기업 신용등급 하향 추세가 구조조정 이슈로 인해 더욱 가속화되면서 신용등급 A급 이하 중위험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시장은 더욱 위축됐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상반기 AA급 이상 회사채는 4조원 순발행된 반면 A급 이하 회사채는 2조원 순상환됐다. 발행한 회사채보다 상환한 회사채 규모가 더 컸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발행잔액 기준 A급 이하 회사채 비중은 2012년 말 40%에서 최근 20%까지 축소됐다.
증권사 관계자는 "우량기업은 딱히 자금이 필요 없어 발행을 하지 않고, 신용등급이 낮은 비우량기업은 하고 싶어도 시장 반응이 좋지 않아 못하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기조가 계속 이어지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이 더욱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신용등급 하향 추세는 하반기에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구조조정 여파로 인해 국내 소비가 둔해지고 국제 금융시장 불안정성이 확대되면서 한국 경기 회복이 지연될 것으로 전망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상반기 12개 기업의 등급을 상향 조정한 반면 그의
한편 주요 대기업그룹 가운데 SK와 CJ는 지난해보다 발행 규모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SK그룹은 대표 계열사인 SK텔레콤과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고, CJ그룹은 CJ제일제당 CJ대한통운 CJ프레시웨이 등이 자금 조달 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전경운 기자 / 고민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