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신한ㆍKB국민 등 6개 은행 CD금리 담합 의혹에 대한 전원회의가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세종 심판정. 이날 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상임·비상임 위원들의 주된 질의는 피고인 신분으로 나선 시중은행측 법무대리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원고격인 공정위 사무처에 집중됐다. 사무처 심사보고서가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매우 ‘부실’ 했다는 때문이다.
한 위원은 “담합은 심각한 범법행위인데 이걸 채팅방에서 했다는 것이 이상하다”며 “양도성예금증서(CD) 발행과 직접 관련돼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는데 이런 곳에서 모의가 가능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날 열린 전원회의에서 공정위 사무처는 위원들의 날선 질문에 제대로 답변조차 못했다. 장장 4년간 시중은행들을 들쑤신 다음에야 겨우 구체적인 증거라고 내놓은 게 메신저 톡에서의 담당자들 간 대화내용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명백한 가격 담합을 유추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 이번에 심의를 담당한 복수의 위원들 전언이다.
우선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CD금리 발행 메커니즘을 알아야 한다. CD금리는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리로 은행이 1차적으로 CD(양도성 예금증서) 발행을 한다. 그 후 증권사는 0.01% 수수료를 받고 이를 시장에 중개하면서 ‘시장상황’과 ‘은행 발행금리’를 종합해 금융투자협회에 매일 장이 끝나고 이를 제출한다. 그러면 금투협에서 거래실적이 많은 10개 증권사 중 상위와 하위 1개 증권사를 제외한 8개 회사의 수익률을 평균해 CD금리를 고시한다. 이를 ‘고시 금리’라고 한다.
공정위 사무처가 4년 동안 물고 늘어진 것은 2009년을 전후로 6개 은행이 담합을 통해 금투협 ‘고시금리’를 그대로 차용해 CD금리를 발행했다는 것이다. 2009년을 전후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5%대에서 2%대로 대폭 낮췄지만 금투협 고시금리 하락폭은 기준금리 인하폭만큼 크지는 않았다. 결국 금투협 고시금리를 그대로 차용하면 금리를 덜 내릴 수 있어서 그만큼 부당이득(대출금리 상승)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담합이 발생할 소지가 높았다는 게 공정위 사무처의 논리다.
하지만 최종 판단을 하는 위원회는 이같은 사무처의 판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가령 6개 은행 중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CD금리 발행시기가 각각 2009년과 2012년으로 3년이나 차이가 난다. 담합을 했으면 ‘같이’ 해야 하는데 시차가 난다는 것이다.
공정위 사무처는 그럼에도 구체적인 증거가 있다며 6개 은행 담당자들이 모인 발행시장협의회 내 메신저 대화를 제시했다. 메신저 내에서 ‘가격(CD금리) 상승’을 암시하는 표현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원회는 사무처측이 제시한 가장 구체적인 메신저 증거도 인정하지 않았다. 메신저에 속한 담당자들이 과장 등 실무자급이어서 최종 결정권자도 아닐 뿐더러 당시 메신저에는 CD금리 담당자뿐만 아니라 은행채 등 다른 영역 담당자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당이득 부분에 대해서도 위원회는 사무처의 판단을 기각했다. 2010년 6월부터 1년 간 기준금리가 2.0%에서 3.5%로 상승한 시기가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에도 은행들은 CD 발행금리를 즉각적으로 높이지 못했다. 담합의 개연성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공정위가 ‘무리한 조사’라는 것을 알면서도 4년이나 사건을 끈 이유로 결국 리니언시(자진신고제도)에 의존하는 관행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공정위가 국정감사 제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한 담합사건(55건) 가운데 무려 80%(40건)가 리니언시를 통해 적발되었다. 2000년대 초반에 50% 이하에 불과했던 리니언시 활용률이 80%로 치솟은 것이다.
사건일지를 봐도 확인할 수 있다. CD금리 담합 의혹을 포착하고 공정위가 최초로 현장 조사에 나선 일은 2012 7월. 그 후 추가 현장조사는 각각 2013년 9월과 2014년 8월로 1년에 한 번 꼴로 이루어졌다. 결정적인 증거가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 ‘내부고발’을 믿고 사건을 질질 끌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문제는 이같은 리니언시 의존행태 때문에 굵직굵직한 담합사건 조사의 경우 4년을 끌어도 제대로 된 증거가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만큼 피조사업체인 기업 입장에서는 피로도가 증가하는 것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아무리 설명을 해도 공정위는 복지부동”이라며 “마치 내부 고발자나 업체가 나오면 한번에 일이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듯 보였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억울함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정위가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종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경우 경제분석가들이 수치분석을 통해 이상징후를 발견하면 이를 토대로 담합사건에 나선다”며 “보다 과학적인 수사역량을 갖추기 위해 공정위가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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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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