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인 50대 이모씨는 지난 연말 투자목적으로 보유했던 오피스텔을 팔아 작년말 새로 생긴 헤지펀드에 2억원을 투자했다. 평소 거래하던 증권사 PB가 신설 헤지펀드의 성과가 좋다며 추천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글로벌 증시가 10% 이상 폭락했지만 이씨가 가입한 헤지펀드는 5%나 올랐다. 어려운 시장에서 한달새 1000만원의 수익을 얻은 이씨는 주변 지인들에 헤지펀드 투자를 조언하고 있다.
지난 3년간 중위험·중수익의 대표 상품으로 군림했던 주가연계증권(ELS)이 흔들리면서 헤지펀드에 대한 투자자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10월 말 사모펀드 활성화를 목적으로 헤지펀드 설립요건을 대폭 완화(자본금 60억원→20억원)한 뒤 투자자문사나 증권업계 고수들의 신규 헤지펀드 설립이 잇따르고 있다. 신생 헤지펀드들은 해외주식, 메자닌(CB·BW), 공모주, 인프라 등 다양한 자산을 대상으로 롱숏 등 헤지전략을 펼치면서 투자자를 유혹하고 있다. 기존 헤지펀드 상당수도 2011년12월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 이후 4년 이상 쌓은 운용노하우와 안정적 성과를 뽐내고 있다. 중위험·중수익 헤지펀드 시장을 놓고 ‘패기’와 ‘관록’의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3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일 보고펀드자산운용과 페블스톤자산운용 등 2곳을 전문사모펀드운용사로 등록했다. 보고펀드자산운용의 경우 원래 경영권 인수를 주목적으로 하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인데 이번에 헤지펀드 시장에 처음 진출했다. 이로써 지난해 10월25일 금융위가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해 헤지펀드 운용사 설립 요건이 완화된 지 100일만에 총 20곳의 새로운 헤지펀드 운용사가 탄생하게 됐다.
이날까지 신규 등록된 운용사 6곳이 총 9개의 헤지펀드를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2일 첫 펀드가 출시됐는데 한달 열흘 만에 9개 펀드로 총 1075억원의 자금이 모였다. 기존 헤지펀드들은 보통 국내주식 롱숏 비중이 70~80%에 달했지만 신생 헤지펀드들은 국내 롱숏 비중을 50%로 낮추고 해외주식과 CB·BW와 같은 메자닌, 달러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활용해 변동성이 큰 시장에서 보다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올 들어 한달 동안 수익률만 놓고 보면 신생 헤지펀드의 성과가 기존 펀드들을 앞선다.
신생 헤지펀드 4개의 연초이후 지난 2일 기준 평균 수익률은 1.9%를 기록했다. 라임자산운용의 ‘모히토 헤지펀드’는 5.1%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그로쓰힐자산운용의 ‘다윈 멀티스트래티지 헤지펀드’도 출시 보름 만에 0.7%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두 운용사는 모두 1호 헤지펀드가 사모펀드 투자한도인 49인을 채우면서 조만간 2호 펀드를 출시할 예정이다.
기존 헤지펀드 33개는 올 들어 지난 2일까지 평균 수익률 -0.6%를 기록했다. 1월 한달 글로벌 주식시장의 조정폭이 컸음을 감안하면 성과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신규 헤지펀드들에 비하면 다소 뒤진 것이다. 펀드별 성과는 크게 갈렸다. 삼성자산운용의 ‘H클럽 Equity Hedge’는 연초이후 1.9%, 2011년 12월 설정이후 40.8%로 꾸준히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했다. 지난해 성과가 좋지 않았던 브레인자산운용의 ‘백두’ 헤지펀드도 연초이후 2.6%, 2012년9월 설정이후 41.3%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대신자산운용의 ‘에버그린롱숏’(-7.7%)이나 쿼드자산운용의 ‘Definition 7 글로벌헬스케어’(-11.3%)는 성과가 저조했다.
영국계 투자은행 바클레이즈가 2001년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글로벌 헤지펀드 수익률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설립된 지 2년 미만의 신생 헤지펀드 평균 수익률이 12.6%로 집계됐다. 같은기간 3~4년차 중간 헤지펀드(8.6%)나 5년 이상 오래된 헤지펀드(8.5%)보다 4%포인트 이상 성과가 우수했다. 신생 헤지펀드 운용사 A대표는 “1호 펀드의 경우 모인 자금이 많지 않아 꼭 사고 싶은 중소형주를 얼마든지 살 수 있고 숏(공매도) 전략 활용도 쉽다”면서 “또 마케팅의 토대가 되니까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
다만 신규 헤지펀드 인가를 받은 곳 가운데 일부는 전략이나 운용경험이 검증된 바 없어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중위험·중수익을 원하는 보수적 성향의 투자자라면 수익률은 다소 낮더라도 3년 이상 안정적 성과가 검증된 펀드를 선택하는 것이 투자 실패 확률을 낮출 수 있다는 조언이다.
[최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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