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권영선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국은 금리를 낮추고 재정 지출을 늘리면서 일단 디플레이션을 막는 데 성공했다. 자산가격이 빠르게 회복됐고 가계·기업·정부 부채도 급증했다. 저금리 정책과 재정 지원으로 파산과 대량 실업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동시에 과잉공급도 지속되고 있다. 자산가격이 실물 경기 회복보다 완화적 통화정책에 의해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고성장하는 중국 경제에 맞춰 설비를 늘린 신흥국의 중후장대 제조업에 과잉공급이 집중됐다.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고 정치시스템도 불안한 신흥국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에 스스로 나서기 어렵다. 대량 실업과 금융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신흥국들은 경상수지를 개선했다. 덕분에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몇몇 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흥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달러 외채 비율이 과거보다 낮아졌다.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과잉공급을 해결하는 전략을 쓸 수 있는 것도 낮은 외채 비율 덕분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 주요 20개국(G20)이 강조하는 '경쟁적 통화 평가 절하 방지'도 강제성이 없어 공허한 외침이 된 지 오래다.
![]() |
한국 제조업 재고율(출하 대비 재고 비율)이 2012년 이후 조금씩 악화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2008년 위기 수준인 130%까지 높아진 게 단적인 예다. 서비스업 회복에 힘입은 연준의 금리 인상이 글로벌 제조업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
양호한 지급능력(solvency)을 갖추고 있어도 유동성(liquidity)이 일시에 고갈되면 신용위험은 피할 수 없다. 최근 글로벌 유동성 위축 조짐은 그래서 걱정스럽다. 중국이 역외 위안화에 대한 투기적 공격을 막기 위해 위안화 공급을 줄이면서 지난 12일 홍콩에서 하루짜리 위안화 금리가 장중 한때 연 67%까지 치솟았다.
금융규제가 강화되면서 헤지펀드와 투자은행이 위험자산을 거래·보유할 수 있는 여력이 크게 줄었다. 국부펀드와 큰손들이 그 공백을 메워 왔는데 최근 유가 급락으로 중동 국부펀드는 자산을 팔고 있고 큰손들의 자산운용도 보수적으로 바뀌었다.
만약 인도가 과거 중국처럼 고성장하면서 글로벌 수요를 견인한다면 과잉공급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 각국은 공급을 줄이지 않고 경쟁적으로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면서 버티려고 할 것이다. 유가 급락과 외화유동성 고갈로 신흥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면 과잉공급은 파괴적으로 해소될 수밖
[권영선 노무라 수석 이코노미스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