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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스빌딩이 밀집한 서울 종로 일대. [김재훈 기자] |
오피스 공급과잉에다 기업경기 침체 탓에 갈수록 빈 사무실 채우기가 힘들어지자 건물주들이 렌트프리로 '반값' 임대료를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인테리어 비용 지원부터 심지어 임차인 입맛에 맞게 건물 이름까지 바꾸고 전용 사우나까지 지어주는 등 갖가지 고육책에 나서고 있다. '일단 공실을 면하고 보자'는 생각에 전세로 들어올 세입자를 찾는 곳까지 나왔다. 치솟는 공실률이 서울 오피스 시장을 '임차인 절대 갑'으로 바꾼 셈이다.
15일 오피스업계에 따르면 최근 지하철 1·2호선 시청역 인근 한 오피스빌딩은 전용면적 3.3㎡당 50만~100만원의 인테리어비를 대는 조건으로 입주사와 임차계약을 맺었다. 임대면적이 9900㎡이고 전용률이 평균 50%대인 것을 감안하면 최고 15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원하는 셈이다. 반년에 달하는 렌트프리 기간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임차비용은 반값 아래로 떨어진다.
심지어 주택에서나 볼 수 있는 전세계약까지 감행한 곳도 나왔다. 지난해 서울 도심권(종로·광화문 등)에서 임차인을 들인 C빌딩은 임차기간 3년, 3.3㎡당 1000만원대 보증금만 받는 전세로 빈 사무실 2000㎡를 채웠다. 같은 면적 1800만원대인 매매가 대비 55% 수준이다. 공실이 그대로 유지되면 관리도 힘든 데다 건물 내 다른 곳까지 비는 악순환이 계속되기 전에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사무실 채우기에 나선 결과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강남에도 장기 공실인 빌딩 일부가 전세 조건을 내걸고 입주사를 모으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건물 절반 이상을 통으로 빌려쓰는 앵커임차인을 위해서라면 건물 이름까지 입주사 입맛에 맞게 바꿔준다. 강남 테헤란로 PCA타워, 대치동 현대오토웨이타워 등이 대표적이다. 입주사가 요구하는 이름대로 건축물 대장에 적힌 건물명을 고칠 뿐 아니라 정문이나 꼭대기에 입주사 이름을 단 대형 옥상간판을 달아줘 밖에서 보면 해당 회사 사옥으로 착각할 정도의 이미지를 만들어준다.
대형 임차인 전용 엘리베이터, 무료 피트니스센터와 사우나까지 설치하고 강당, 회의실 등 공용시설을 공짜로 제공하는 곳도 많다. 입주사 최고경영자(CEO)를 위한 발레파킹 서비스도 눈에 띈다.
최근 프라임급 오피스 건물 사이에 유행인 '맛집' 유치도 임차인 발길 잡기의 일환이다. 백민기 NAI프라퍼트리 리테일본부장은 "홍대, 가로수길, 해외에서 유행하는 맛집을 지하 아케이드에 들여 와 입주사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이는 전략"이라며 "몸값이 뛴 유명 맛집은 보증금을 아예 안 받거나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입점시키는 대신 매출 10~20%를 수수료로 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한때 콧대 높던 오피스빌딩들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돌아선 것은 치솟은 공실률 때문이다. 리맥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주요 지역 오피스 공실률은 15~17%로 최근 3년래 최대치를 찍었다. 경기 침체에 은행이나 증권사를 중심으로 사무실을 줄이거나 아예 빠져나간 탓이다. 최근 급부상한 판교는 그나마 서울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장기 우량 임차인까지 흡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도심권의 대로변이 아닌 이면도로에는 절반 넘게 비어 있는 중소 오피스빌딩이 심심찮게 보이는 상황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일부 비
남효준 교보리얼코 LM팀 과장은 "송파 제2롯데월드타워, 삼성동 파르나스타워 등 초대형 오피스를 포함해 올해 새로 나오는 오피스 면적만 작년의 1.6배에 달한다"며 "입주사를 모으기 위한 건물주들의 출혈경쟁은 더 심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태성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