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된 밥을 놓쳤다." 지난 24일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신임 부총재로 호주 출신 여성 데버러 스토크 전 대사를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발표와 함께 서울과 세종시의 관가에선 "아뿔싸" 하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한국 정부가 ADB 부총재 후보로 밀었던 인사가 탈락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ADB 회원국 67개국 가운데 지분율이 5.1%로 일본, 중국, 인도, 호주, 인도네시아에 이어 여섯 번째 대주주다. 그런데도 임기 3년짜리 부총재 자리 6개 가운데 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는 수모를 벌써 12년째 겪고 있다. 현재 ADB 수뇌부는 일본 출신의 나카오 다케히코 총재를 필두로 6개 부총재 자리를 중국, 미국,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프랑스 출신 인물이 맡고 있다.
ADB는 1966년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해 만든 국제금융기구다. 개발도상국 인프라스트럭처 개발 자금 역할을 하기 때문에 아시아지역 개발도상국들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이 때문에 ADB 부총재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진다. 국익에 직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국이 12년을 기다린 ADB 부총재 자리를 놓친 것도 안타깝지만, 더욱 뼈아픈 교훈이 있다. 한국이 이번에 ADB 부총재를 배출하지 못한 게 실력과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랜 기간 공들여왔음에도 불구하고 막판 4개월 동안의 전략 실패로 결국 부총재를 배출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장 큰 패인으로는 미숙한 후보 추천 과정이 꼽힌다. 정부가 오랜 기간 대외적으로 얼굴을 알려왔던 인물을 추천하지 않고 의외의 인물을 추천하면서 판세가 불리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ADB 측도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 정부가 기존 부총재 자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여성 후보 카드를 내밀고 'ADB 최초 여성 부총재 필요성'을 설파하자 막판에 전세가 완전히 뒤집혔다는 게 ADB와 관가 안팎의 설명이다.
과거 ADB는 한국의 국력 성장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국제기구였다. 1988년 정인용 전 부총리가 ADB 부총재에 오른 이후 이봉서 전 상공부 장관(1993~1998년), 신명호 전 재경원 차관보(1998~2003년)가 자리를 이어받으면서 15년간 ADB 부총재 자리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중국이 세계 경제 중심축으로 급부상하며 2003년 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총재인 중국 진리췬에게 자리를 내준 이후 현재까지 부총재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국가 간의 관계, 국제기구 회원국의 관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특히 국제기구 진출을 위해서는 국가적으로 치밀한 전략 수립이 필요한 데 안타깝다"고 분석했다.
한국 정부는 12년 만에 기필코 ADB 부총재 몫을 되찾겠다는 목표에 따라 일찌감치 표 확보에 나섰다. 이에 관료 출신이지만 국제기구 경험이 풍부한 A씨가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나카오 총재가 개인적으로 선호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ADB 내부적으로도 신망이 두터워 다른 회원국도 A씨를 높게 평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부총재 지명을 불과 4개월여 앞두고 A씨가 아닌 또 다른 인물 B씨를 밀기 시작했다. B씨 역시 능력과 경험 측면에서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ADB 회원국들이 이 과정에서 뭔가 석연치 않다는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부터 관가 주변에
앞으로 국제기구에서 한국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번 ADB 부총재직 선출과정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초반 판세상 불리했던 호주가 여성 부총재 후보자를 내세운 점은 두고두고 곱씹어볼 교훈이다.
[조시영 기자 / 최승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