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회사채 발행 주관이나 인수·합병(M&A) 자문, 사모투자펀드(PEF) 업무 등 민간부문과 중첩되는 업무의 비중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은 이르면 이달말 발표되는 금융위원회의 ‘정책금융기관 역할 재정립 방안’에 반영돼 내년부터 현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정책금융 역할 강화 방안 세미나’에서 “시장마찰영역 (민간이 할 수 있는 분야를 공공기관이 수행해 산업발전 가로막는 것)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의 역할을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회사채 주관과 M&A 자문, PEF 등에 대해 탄력적으로 기능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제위기나 경기변동에 따라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면서 민간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산업은행의 역할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동안 산업은행의 발행시장실과 M&A실, 사모펀드실 등은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해 민간 부문 성장을 저해해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구 연구위원은 기업대출과 관련해서 “ ‘잘 나가는’ 성장형 기업에 대한 대출 영업은 민간에 맡기고 산업은행은 리스크가 높거나 복잡한 산업에 대한 여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 규모 별로는 산업은행이 중소기업보다 중견기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구 연구위원은 “신용보증기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이 상대적으로 창업기업에 집중됨을 감안할 때 산업은행은 기본적으로 중견기업을 주 타겟으로 해서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 검토해야 한다”며 “초기 기업에 대해서는 단순투자나 직접 대출보다는 벤처캐피탈과 연계한 간접투자나 온렌딩 대출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산업은행의 중견기업 지원도 민간과의 마찰을 고려해 투·융자복합금융, 지식재산권(IP) 금융 등 처럼 민간이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분야로 차별화해야 한다고 그는
구 연구위원은 또 신용보증기금·기술보증기금의 역할 재조정과 관련해 창업단계에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보증지원을 현재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창업한 지 오래된 기업들에 대한 장기 정책보증 지원은 기업의 자생력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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