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금리 시대, 상가는 수익형 부동산의 꽃이라 불린다. 제대로 투자해 성공하면 부동산으로 정말 이만한 게 없다. 직장인은 상가 월세가 든든한 월급통장이되고 은퇴자는 노후 걱정을 크게 덜 수 있다. 그런데 상가 투자는 어렵다. 입지는 기본이고 배후 수요와 유동 인구, 건물 설계·디자인, 유통업계 트렌드 등 따져봐야할 것들이 너무 많다. 상가 투자로 수익을 거두려면 최소 부동산 9단쯤 되야 한다.
그렇다면 부동산 9단들은 어떤 투자 전략을 갖고 있을까. 상가 중에서도 난이도 최상급인 대형 복합상업시설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강정구 CBRE 글로벌 인베스터스 자산운용 전무,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 정동섭 토마스컨설턴츠 한국지사장(가나다 순)으로부터 상가 시장 전망과 투자 노하우를 들어봤다.
-상업시설이 너무 많지 않나. 장사가 되는지 투자해서 수익을 낼 수 있는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정 지사장=쇼핑센터 면적을 예로 들면 미국은 3.3㎡당 2명, 일본은 8명 꼴이다. 반면 한국은 31명. 일본은 쇼핑센터가 전국에 3000여개나 된다. 우리나라는 백화점을 합쳐도 150~160개 정도다. 소득수준과 공급면적을 감안하면 국내 상업시설은 부족하다.
▶박 지사장=한국은 자영업자와 동네 상권이 많고 인구 밀도가 높아서 상가 시장의 잠재력이 크다. 한국도 조만간 외국처럼 하나의 오퍼레이터가 관리·운영을 맡는 쇼핑센터가 들어올 것이다. 영등포 타임스퀘어나 판교 아브뉴프랑이 쇼핑센터의 사례다. 최소한 일본만큼 늘어날 것으로 본다.
-신도시 상가 투자는 시대적 흐름과 맞지 않은 건가.
▶박 지사장=개인에게 상가 분양하는 것은 전세계에서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부동산 중에서 가장 관리를 잘 해야하는 게 상가다. 앞으로 상가 시장 판이 바뀐다면 주택 시장에서 전세가 없어지는 것처럼 일부 근린생활시설을 제외하면 웬만한 상가들은 쇼핑센터로 흡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리츠를 통해 투자하는 것 아니면 개인이 상가를 투자해 수익을 내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만큼 앞으로 신도시 상가 분양은 사라지지 않을까.
▶강 전무=디벨로퍼가 상가를 개발하고 운영하면서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금융이 도와줘야하는데 은행 등은 빌려준 자금을 회수하는데 급급하다. 그렇다 보니 상가를 쪼개서 팔게 되고, 이를 개인 투자자들이 분양 받는 게 우리의 현재 모습이다. 이것을 바꾸려면 분양 상가를 무조건 사지마라고 할 게 아니라 상가를 책임지고 관리·운영해 수익을 내는 오퍼레이터가 나와줘야 하고 성공 사례가 쌓이면 개인에 상가 분양하는 사례는 줄어들 것 같다.
-잘 된 상가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성공한 상가 사례 소개한다면
▶강 전무=일산의 라페스타는 오퍼레이터가 없었다. 300~500명의 분양주들이 상업시설을 관리하겠다고 나섰는데 사공이 여럿이 되다보니 생각만큼 잘 활성화되지 못했다. 판교 아브뉴프랑은 상가 운영·관리를 잘 한 사례다. 영등포 타임스퀘어도 경방이 뚝심 있게 운영하면서 롯데 백화점을 이겼다. 경방이 타임스퀘어를 쪼개 팔았으면 롯데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것이다.
▶박 지사장=삼성동 파르나스몰은 코엑스와 현대백화점 사이에 끼어 제대로 기획이 안됐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합정역 메세나폴리스는 개별 분양됐지만 2년간 오퍼레이터의 책임 운영으로 상가를 활성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상업시설은 입지도 중요하지만 오퍼레이션 여부에 따라 결과가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
-여윳돈이 있다면 상가 투자할만한가
▶강 전무=위례처럼 유동인구와 상주인구를 같이 보유하고 있는 위치에 있는 상가가 가장 좋다. 세입자를 못 구하거나 급전이 필요해서 내놨을 때 안 팔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서울이 아니더라도 수도권이나 기타 지역의 택지지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필요한 곳이 있다. 그곳의 상가를 노려야 한다. 1층이 좋고 3층 이상은 권하기 어렵다.
▶정 지사장=상가는 이를테면 내가 중식당 사장이어서 장사한다면 분양 받는 것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위치까지 좋으면 비용 절감 효과가 더 커진다.
▶박 지사장=택지지구를 보면 위치와 면적상 쇼핑센터가 들어가기 딱 좋은 자리가 있는데 한국은 여기에 상가 분양하는 경우가 많다. 거꾸로 쇼핑센터가 들어설만 한 곳에 분양하는 상가는는 나름 괜찮다고 봐도 될 것 같다.
▶강 전무=한국은 대형 상가를 쪼개서 파는 경우가 많은데 시행사나 건설사가 이 상가를 운영·관리해주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개별 분양 상가라도 누군가가 제대로 운영하고 관리해줄 수 있는 상가는 투자자에게 팔고 나몰라라 빠져나가는 것보다 훨씬 낫다.
-잠실 제2롯데월드 저층부 상업시설이 개장하면 사람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주변 상권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염려가 있다. 반대로 유동인구가 늘어 상권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맞나.
▶정 지사장=대형 상업시설이 생기면 주변에 크고 작은 상가가 장사가 잘되고 결과적으로 상권이 산다. 리테일은 세력화가 중요하다. 상가가 잘 되려면 상권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뜻이다. 예컨대 명동은 메인 스트리트에 대형 상가가 여러개 자리잡고 그 사이사이로 작은 상가들이 들어섰다. 대형 상가 내 점포가 길거리 상가와 업종이 다르다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강 전무=후자다. 일산에 원마운트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라페스타만 해도 큰데 인근에 또 상업시설이 들어서면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포인트는 상권이다. 일산이 강남이나 분당에 비해 저평가 돼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쇼핑몰 달랑 하나 있다고 지역이 좋아지긴 어렵고 이런 시설이 팍팍 들어와야 상권을 형성하고 지역이 성장한다.
-대형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곳은 부동산 가치가 오른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박 지사장=광명역 역세권 개발 같은 프로젝트를 일본 디벨로퍼들이 많이 한다. 예컨대 일본 대표 디벨로퍼인 미쓰이는 역세권에 상가를 먼저 개발해 오픈하고 주택을 짓는다. 한국처럼 집을 먼저 짓고 상가를 나중에 만드는 것보다 거꾸로 상가를 먼저 지어 지역을 활성화시킨 뒤 집을 지으면 주택 가격이 더 많이 오른다는 것. 한국 건설사와 시행사는 똑같은 집을 짓고도 좀 손해를 보는 셈이다.
▶정 지사장=미국도 같다. 타운을 개발할 때 쇼핑센터를 우선 짓고 집을 짓는다. 일반적으로 쇼핑센터가 들어선다는 발표 전이나 발표할 때 땅 사고(무릎) 준공 직전(어깨)에 팔면 좋다.
▶강 전무=오피스 상업시설도 주거 상업시설과 같다. 여의도 지하상가나 먹자골목은 잘 정리가 안됐지만 IFC몰은 굉장히 깔끔하다. 상업시설을 잘 만들어놓으니 오피스 빌딩의 프리미엄이 엄청 높아진다. 상업시설은 주거에 붙든 오피스에 붙든 부동산 가치를 상승시키는 데 굉장히 중요하다.
-개인 투자자가 어디에 투자하면 좋을지 묻는다면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정 지사장=주식보다 부동산을 추천하겠다. 땅을 벗어나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설령 땅의 가치가 변해도 땅은 땅이다. 금융이 뒷받침되면 부동산 시장은 좋은 시장이 될 것이다.
▶강 전무=부동산 중에 뭘 살지 고민이라면 상가를 고려해볼 만하다. 위치가 좋고 임차인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상가는 다소 비싸지만 시장이 망가졌을 때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주식처럼 완전히 날리지는 않는다. 상가 분양가가 높다는 의견이 많은데 기본적으로 토지비, 금융비, 건축비, 분양 마케팅비 등이 비싼데다 세금을 내고 나면 투자자가 기대하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상가 개발·분양 방식이 제도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수분양자가 수익률을 맞추기 쉽지 않다.
▶박 지사장=땅은 한정적이서 결국 수익률 싸움이다. 모리 입장에서 보면 역세권이나 하이앤드(high-end) 타운이 공략 대상지가 될 수 있겠다. 한국에서는 한남동 독서당길 모델을 꼽을 수 있다. 이를테면 독서당길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8채 정도 매입해 스토리를 입혀 리모델링하면 동네가 활성화되고 건물 자산가치가 올라가는 식이다. 경리단길도 성공 사례다.
▶강 전무=단 건물 한 두개 사서는 효과가 미미하다. ‘바이 더 스트릿(buy the street)’, ‘바이 더 타운(buy the town)’ 정도로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건물을 여러 채 사서 기획하면 동네가 달라진다. 방배동 카페거리도 지금은 많이 죽었지만 전략적으로 접근하면 되살릴 수 있다.
-저평가 됐지만 앞으로 유망한 곳은.
▶정 지사장=압구정 로데오거리는 가로수길에 밀려 침체를 겪고 있지만 기획력으로 깔끔하게 정리하면 상권 자체가 부활할 수 있다. 압구정 로데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잠재력이 있다.
▶박 지사장=용산구 해방촌길, 만리시장, 종로구 부암동 등은 콘텐츠가 많아서 뜰 가능성이 높다. 도쿄 오모테산도가 핫플레이스가 된 것도 상업시설 기획자가 몇몇 건물주들에게 건물을 새롭게 바꿔보자고 제안해 트렌디한 숍들이 오픈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서울은 동네 상권이 많다. 이런 곳의 메인 스트리트는 건물을 사서 잘 바꾸면 뜰 것으로 예상된다.
<대형 복합 상업시설 개발 전문가(가나다 순)>
▶강정구 CBRE 글로벌 인베스터스 자산운용 전무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부동산 투자·컨설팅 회사의 계열사다. 라페스타, 웨스턴돔, 원마운트 등 개발을 총괄했다. 20년간 국내외 부동산 개발 기획과 투자 컨설팅을 해왔으며 부동산금융 분야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박희윤 모리빌딩도시기획 한국지사장
-도쿄 롯폰기힐스, 토라노몬힐스 등 대형 복합개발로 유명한 일본 간판 부동산 개발회사 모리빌딩의 자회사다. 국내에선 상업시설의 마스터플랜부터 운영·관리까지 종합 컨설팅을 하고 있다. 파르나스
▶정동섭 토마스컨설턴츠 한국지사장
-대형 복합상업시설 개발 컨설팅을 하고 있다. 토마스컨설턴츠는 캐나다 벤쿠버에 설립된 부동산 개발 컨설팅회사다. 주요 개발 프로젝트로 여의도 IFC몰, 제2롯데월드, 신세계 센텀·동대구·하남·삼송 등이 있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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