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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에 있는 은행 PB센터에서 주가연계신탁(ELT)에 투자하기 위해 찾아온 A씨는 상품 가입에만 1시간을 쏟아부었다. 개인 자산관리사(PB)로부터 상품설명서 등 각종 서류 작업을 요구받고, 일일이 설명을 들은 다음 서명하는 일을 반복적으로 해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 가입을 위해 먼저 투자성향을 분석하기 위한 투자자정보확인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 다음 소비자 위험 회피 성향이 나타난 '투자이용등급'을 확인했고, PB가 읽어주는 10여 장에 달하는 상품 관련 내용을 들어야 했다. 그 다음 가입신청서 등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작성했다.
이 같은 절차를 거치는 건 최적의 투자를 하기 위해 투자성향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실제 창구에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잘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주가연계 관련 상품은 투자 위험이 어느 정도 있는 상품이라 성향 분석을 해 진단표를 받아 본 다음 가입 절차를 밟는다"며 "불완전판매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고객들은 서류 작업에 불만이 많은 편"이라고 토로했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소비자가 은행 창구에서 주가연계펀드(ELF)·ELT 등 금융상품을 가입할 때 작성해야 하는 서류 종류가 최대 9개에 달한다.
ELT를 예로 들면 2013년 4월 기준 가입 시 필요한 서류 종류는 가입신청서, 투자자정보 확인서 등 총 다섯 가지였다. 이후 투자자 보호를 명목으로 서류 종류가 계속 늘어났다. 2014년 초에는 '특정금전신탁 상품설명서', 같은 해 6월에는 '설명서 교부 및 주요 내용 설명확인서(은행·고객 보관용 각각)', 7월에는 '특정금전신탁 알리미서비스 신청서' 등이 추가됐다. 개인 공모펀드 신규 가입 시에는 거래신청서 등 네 가지 종류 서류 50여 군데에 각종 정보를 기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 은행 창구 직원은 "채권형 상품의 경우 투자손실 위험이 비교적 낮은데도 다른 주식형 상품처럼 각종 서류 작성이 필요해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자필 서명해야 하는 서류 종류는 늘었지만, 정작 소비자가 모든 서류를 꼼꼼히 읽어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복잡한 절차가 오히려 투자자 권리를 지켜주지 못하는 역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창구 직원이 형광펜으로 밑줄을 치고 그곳에만 서명을 하도록 하는 게 현실이다.
은행권에서는 절차 간소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실제 투자 판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간이설명서 형태로 설명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주식편입 비율 등 투자 위험도나 소비자 투자성향에 따라 가입 서류를 추가하는 방식
아직 금융당국과 은행연합회 등은 적극 나서고 있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서류 간소화 작업은 은행뿐만 아니라 증권·보험 등 모든 업권 간 의견수렴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섭 기자 / 김효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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