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은행법은 사외이사 결격요건을 엄격하게 해놨는데 이게 문제다. 은행법 제22조는 해당 은행 또는 그 은행 자회사에서 최근 2년 이내에 근무했던 임직원은 사외이사를 못하게 해놨다. 여기에 중요한 거래관계에 있거나 사업상 경쟁관계 또는 협력관계에 있는 회사의 임직원이나 최근 2년 이내에 근무했던 사람도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사외이사 독립성을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법령에서 결격요건을 지나치게 세분해 규제하는 바람에 금융 현장에서는 결국 교수밖에 뽑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해당 금융회사와 1억원 이상 거래관계가 있으면 사외이사 결격요건에 해당한다. 개인 목적으로 은행에 1억원 넘는 통장 잔액이 있다면 해당 은행 사외이사는 될 수가 없다는 얘기다. 해당 금융회사와 전산 정보처리를 비롯한 용역계약이나 금융업 관련 조사·연구 계약을 체결한 법인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어도 사외이사가 될 수 없다. 모 금융회사는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한국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고 했지만 쇼핑몰이 카드사 결제 때 제휴 할인하는 업무제휴 계약이 있다는 이유로 뽑을 수가 없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금융과 IT 융합과 관련해 IT업계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려 해도 30여 개에 달하는 결격사유를 적용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 탈락한다는 설명이다. 해당 금융회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퇴직 임원을 선임하려 해도 2년은 지나야 한다. 사업상 경쟁관계나 협력관계가 있었던 임원도 사외이사로 갈 수 없다.
문제는 최근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면서 이 같은 요건을 오히려 더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해당 금융회사 임직원은 3년간 사외이사를 못하게 강화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한술 더 떠서 사외이사 냉각기간을 아예 2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시중은행 C부행장은 “금융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해당 회사와 경쟁사, 협력사에서 나올 텐데 2년도 모자라서 3년, 5년씩 묶어버리면 누가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느냐”면서 “외국계 금융회사들은 우수한 퇴직 임원도 사외이사를 시켜서 전문성을 높이고 있는데 한국은 과도한 규정이 전문성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법 자체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경직적인 규제로 사외이사 인력 풀을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모범규준을 통해 전문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경험이 부족한 교수나 연구원들이 사외이사를 독식하는 상황이다. 이해 상충은 막아야 하겠지만 중요한 거래관계 요건 등을 합리화할 수 있게 개선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주
이사회 의장을 사외이사만 맡게 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금융회사 임원 D씨는 “주인 없는 KB금융 같은 곳은 가능하겠지만 주인 있는 보험사는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으면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며 “자본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송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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