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지점장 A씨는 대출승인요청서를 본점 심사부에 올렸다가 번번이 퇴짜를 받았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 대출은커녕 200억원짜리 담보 물건에 대한 100억원 대출 승인조차 받지 못했다. '실적 부진, 신용등급 하락, 담보물건 가치 계산 잘못' 등 서류상으로 각종 꼬투리를 잡힌 탓이다. 또한 경기 변동과 산업별 포트폴리오에 따른 대출 한도 때문에 대출 불가 판정도 받았다.
당장 은행 본점으로 달려가 따지려고 했더니 "리스크 관리는 윗선(지주회사) 지침이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결국 해당 중소기업은 대출받지 못했다.
금융당국이 금융권에 만연한 '보신주의'를 없애면서 기술금융 활성화에 나섰지만 시중은행 대출 문턱은 여전히 높다. 중소기업들이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건전성만을 우선시하는 시중은행 본점 심사부에 막혀 좌절하고 있다. 성장 가능성이나 기술력보다는 재무제표와 담보 가치만 보고 대출심사하는 관행 때문이다.
특히 본점 심사역 대부분은 상경계 출신으로 회계ㆍ상품ㆍ법규 등에 밝은 편이지만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다 보니 기업 자금 상황과 신용등급에 주로 의존해 대출 승인을 결정하고 있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 기업여신 심사인력 중에 이공계 출신은 4.1%에 불과하다. 기업은행 기업여신 심사역 163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3명에 그쳤다. 국민은행 87명 중 이공계는 5명 안팎, 하나은행과 신한은행 역시 한 자릿수 이공계 인력만 기업 대출심사에 배치했다. 은행들은 뒤늦게 기술금융 전문인력 채용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은 자체적으로 기술금융을 활성화할 수 있는 조직을 갖추지 못했다. 금융당국도 본점 심사역의
금융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본점 심사역이 과거 관행대로만 대출해주는 것은 기술금융을 저해하는 심각한 문제"라며 "이런 문제를 타파하고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각종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계만 기자 /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