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따르고 있는 선진국 국채금리 하락의 기저에는 저물가ㆍ저성장이라는 '장기침체론'이 깔려 있다. 통상 금리가 떨어지면 기업과 가계 모두 싼 이자로 대출을 받아 투자와 소비를 늘릴 유인이 높아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계나 기업 모두 '값어치가 떨어지는 돈'을 쓰지 않고 쌓아두고만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기업과 가계 모두 시간이 지나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다. 그럼 아무리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려도 돈이 돌지 못하고 경제가 얼어붙는 '유동성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금리 하락은 되레 경제 주체들에 경기 하락의 시그널을 주게 되어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게 되고, 물가 하락을 대비해 돈을 더 쓰지 않는 악순환에 빠진다. 특히 고령화 사회로 진행하면서 금리 인하가 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경향이 뚜렷해져 민간소비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이 같은 우려를 촉발시킨 금리 하락은 지난 14일 독일 이탈리아의 2분기 성장률이 보합으로 나온 것이 시발점이 됐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 정책을 단행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독일 10년물 국채금리가 1% 밑으로 떨어졌다.
이 여파로 일본의 10년물 국채금리는 15일 일시적으로 0.495%까지 떨어졌다. 1년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2.3%대로 주저앉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금리 인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 탓이기도 하지만 저변에는 잠재성장률 저하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금리가 낮아지고 있는데도 기업의 설비투자가 회복되지 않고 임금이나 물가 상승률도 둔화되는 '성장의 한계'가 미국 유럽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카다 하지메 미즈호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닛케이에 "세계의 일본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정의했다. 유럽은 저물가ㆍ저성장이라는 일본식 경제정체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초이노믹스에 막 시동을 건 한국 경제는 확장적 재정ㆍ통화 정책을 통해 글로벌 경기침체 국면을 벗어나려 발버둥 치고 있다. 지난 14일 한은은 1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해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했다. 한국만 나 홀로 고금리를 유지할 경우, 외화자금의 국내 유입이 가속화되고, 원화가치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상황에서 수출의 힘이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도 한은의 금리 인하는 상징적으로 의미 있는 결단이라는 평가가 대체적이다.
글로벌 일본화와, 한은의 향후 금리 향방에 결정적 키를 쥐고 있는 곳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다. 경기 회복을 반영해 올가을께 양적완화를 중단하고 내년에는 금리를 올리겠다는 분위기지만 장기적인 성장이 지속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도쿄 = 황형규 특파원 / 전범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