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부터 시행한 주민등록번호 수집 금지 문제로도 금융회사들은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개정된 정보통신망법 시행에 따른 세세한 규정 해석이 필요한데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 모두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B은행 정보통신팀은 수표 발행 때 주민등록번호를 받을 수 있는지, 신규 예ㆍ적금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등에 대해 금융위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 하지만 금융위 담당자는 "예ㆍ적금 문제는 수신상품 담당자가 아니면 통화도 않겠다"며 업무 자체를 거부했다.
B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걸려 있는 상품이 워낙 많고 각 담당자들이 하나하나 따지기도 현실적으로 무척 어렵다"며 "특히 주민등록번호 수집 안 한다는 내용의 안내도 개정 이전에 고객들에게 해야 하는데 유권해석이 안 내려오니까 답답했다"고 말했다. 겨우 유권해석을 받기는 했지만 여전히 못 받은 것도 있어 일단 주먹구구 식으로 진행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보험사들도 마찬가지다. C보험사 임원은 "제휴 서비스로 제공하는 단기상해보험 가입이나 건강검진 제공이 특별이익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금감원이 해석해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연간 보험료 10% 규모 또는 3만원이 넘는 특별이익을 제공하면 과태료나 업무정지 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보험업계에서 금감원에 명확한 기준의 명문화를 요청했으나 중ㆍ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금융당국의 '면피성 보신주의' 행태에 속이 타는 것은 금융회사들이다.
D금융지주 임원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는 대형 로펌 2~3곳에 요청해 법률자문을 아예 받아서 문서로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용은 당연히 많이 들지만 이게 속도도 빠르다"며 "규제 완화도 좋지만 당국에서 유권해석만 잘해줘도 업무 효율성이 크게 좋아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외국계 증권사 한 임원은 "업계 모임에 가서 유권해석 때문에 매년 로펌에 지출하는 비용을 우리끼리 합쳐봤더니 100억원에 달하더라"며 "금융당국에 있는 변호사나 전문가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해석만 해줘도 이런 비용은 줄어들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에는 변호사ㆍ회계사가 11명 있고, 금감원에서는 변호사 91명ㆍ회계사 330명을 보유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유권해석을 해 줄 수 있는데도 책임지기 싫어하는 금융당국의 복지부동에 비판 목소리가 높다.
E은행 준법감시팀장은 "금융위든 금감원이든 규정이나 법령 해석을 요청하면 절대 서면으로 답해주지 않고 구두로만 한다"며 "그것도 법령을 읽어주는 수준으로, 원칙은 이러니까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면으로 받으려고 하면 못해도 6개월~1년은 걸린다"며 "당장 급하니까 어쩔 수 없이 법률회사에 자문을 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금융회사들 사이에선 금융위나 금감원 유권해석을 받아 오는 것 자체를 담당자 능력으로 평가할 정도다. 모 시중은행 임원은 "은행장한
※ '금융 보신주의' 제보 받습니다 money2@mk.co.kr
[송성훈 기자 / 김효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