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10여 년 간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한식집을 운영했다. 이 식당은 음식이 정갈하고 맛깔스러워 식도락가들 사이에 입소문이 날 정도로 번창했다. 가로수길이 관광명소로 알려지면서 이 식당을 찾는 외국인들도 적잖았다. 하지만 이 식당은 지금 사라지고 없다. 갑자기 명도*를 당해 새 건물주에게 쫓겨난 것이다.
*명도란 점유권을 현실적으로 타인에거 넘겨주는 것을 말하며, 재판상 가옥(주택, 점포)은 명도로, 토지는 인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대한민국 자영업자는 약 560만명으로, 이중 절반 이상은 50대 베이비부머로 추산된다.
이들의 평균 자산은 80%가 부동산에 쏠려있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금융이나 현금자산은 전무하다시피 하기 때문.
은퇴한 베이비부머는 마땅한 재취업 일자리가 극히 드물기 때문에 결국 자영업(창업)시장에 뛰어들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만만치 않다. 정기적으로 오르는 임대료만큼 매출이 늘지 않으면 손해를 보고 문을 닫아야 한다.
폐업 숫자는 매년 증가추세로, 지난해 폐업인구는 약 90만명이다. 하루에 2500곳이 문을 닫는 셈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황당한 일이 자영업시장에 벌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해 매출이 올라 돈 버는 재미가 쏠쏠할 때 쯤 건물주로부터 점포를 빼달라는 통지를 받는 경우다.
#홍대에서 권리금 9000만원과 인테리어 비용을 포함한 각종 부대비용 19만7000만원을 투자해 음식점을 시작한 B씨. 몇 달간의 고생 끝에 단골손님이 생길 정도로 매출이 안정됐다. 하지만 반년 만에 건물주가 바뀌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 주인은 건물의 재건축을 이유로 B씨에게 점포를 비워달라고 통지했고, B씨는 비울 수 없다고 버티다 결국 강제집행을 당했다.
#제주 바오젠거리에서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는 C씨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도 건물주와 계약할 때 “장사를 계속 할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창업했다. 권리금 5000만원과 부대비용 7000만원을 투자한 가게는 C씨의 장사수단에 힘입어 손님으로 넘쳤다. 하지만 사업을 시작한지 1년이 되기 전 건물을 매입했다는 새 건물주로부터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일부이나 위와 같은 사례는 우리 주위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상권이 활성화되고 매출이 오르자마자 건물주는 기다렸다는 듯 건물(또는 점포)에 웃돈을 붙여 파는 것이다. 혹은 오른 매출만큼 임대료를 올리거나 임차인을 쫓아내고 점포를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 [올해 초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이 건물주의 무리한 보증금 및 월세 인상으로 시위를 벌였다.] |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건물주가 계약 갱신을 원하지 않으면 임차인에게 영업 보상을 해준다. 이른바 권리금을 포함한 영업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임차인들끼리만 권리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놔 임대인이 권리금을 노리고 임차인을 내쫓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권리금이라는 것이 법적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적용된 임대보증금과는 달리 아직 법제적으로 정의가 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 없이는 이 같은 피해가 속출할 수밖에 없다.
보통 상가매물의 권리금계약이 이뤄지고 난 후, 건물주(임대인)와의 임대차계약이 이뤄진다. 문제가 발생이 되는 경우는 건물주는 임대보증금, 월임대료를 임차인과 계약을 했기 때문에 권리금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없다(모르는 경우도 많음)는 것이다.
물론, 권리금계약이 오가면서 새로운 임차인이 왔다는 건 알고 있다. 새로운 임차인이 와서 장사가 잘 되는 것을 본 건물주가 계약기간 이후에 재계약시점이 왔을 때, 재계약을 안 한다던지 월세를 월등히 올리려는 건물주가 있기 때문이다.
보통의 분쟁은 월세상승에 대한 부분보다 재계약을 안 해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월세가 생각보다 많이 오르더라도 투자한 금액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장사를 그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로는 상상 이상의 금액으로 월세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는 ‘재계약 의사가 없으니 알아서 나가라’는 말로 해석가능하다.
2014년 개정된 상가임대차보호법 내용은 서울시의 경우 전세가환산기준 4억원 이하가 보호대상이다.
예를 들어 보증금 5000만원에 월세 200만원인 경우,
전세가환산기준 5000만원 + (월세200만원 x 100) = 2억50090만원으로 보호대상에 속한다. 보호대상에 속하면 영업권 5년이 인정이 되며, 건물주 마음대로 월세를 올릴 수 없도록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그러나 상권이 잘 형성이 되어 있는 곳들은 대부분이 해당 보호기준에 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임대인의 높은 임대료상승요구에 대해 임차인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 단, 임대인은 주변시세를 따져서 월세를 올릴 수 있다는 조항은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남은 3년간의 정부정책 중 권리금보호에 관한 법률을 만들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주요 골자는 상가권리금에 대한 정의를 법적개념으로 명문화한다는 것이다.
↑ 전주대학교 김홍진 객원교수 |
권리금 거래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공인중개사를 통한 거래를 유도하는 내용도 있다. 이를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는 권리금거래를 수면위로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모처럼 권리금에 대해 정부도 고민에 들어갔으니 빠른 시행안을 마련해야 한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지 않고 열심히 일한 만큼의 단 열매를 얻어 가는 게 자본주의 시장 이치에 맞지 않겠는가.
[자문 전주대학교 객원교수 김홍진 박사 / 정리 조성신 기자]
[참고 : 현재 애니랜드개발의 대표인 김홍진 박사는 전주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를 겸임하고 있다.]
• [김홍진의 현장고발] ‘부실채권’이 뭐길래…내 재산 ‘부실’은 뒷전 |
• [김홍진의 현장고발] 경매꾼에 속은 당신 ‘통장 잔고는 안녕하십니까’ |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