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사모투자펀드(PEF) 보고펀드가 LG실트론 투자를 위해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차입금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지게 됐다. 사모펀드가 인수ㆍ합병(M&A)을 둘러싸고 금융권에서 돈을 빌렸다가 원리금을 갚지 못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투자 실패 책임을 놓고 보고펀드가 LG실트론의 최대주주 LG와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소송을 내자 LG도 맞소송을 하기로 해 치열한 법정 공방이 예고됐다.
25일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보고펀드가 LG실트론을 인수하면서 빌린 인수금융을 회수하기로 결정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보고펀드에 대출 회수를 28일 통보해 이르면 이날 채권단회의도 열어 지분 매각 등 향후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권단은 보고펀드가 인수금융을 상환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담보로 잡았던 LG실트론 지분을 공동으로 매각할 전망이다.
이날 보고펀드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LG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 소송을 제기했다.
보고펀드 측은 "2011년 6월 LG와 주주 간 계약을 통해 LG실트론 이사회 결의를 거쳐 상장을 추진했으나 구본무 회장 지시로 (상장이) 중단되면서 투자금 회수 기회를 상실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LG는 즉각 반박 자료를 내고 "구 회장 상장 중단 지시 등 보고펀드의 주장은 사실무근"이라며 배임 강요 및 명예훼손 등 혐의로 강력히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LG그룹 측은 "2011년 금융시장 불안으로 상장을 연기했을 당시 보고펀드도 주주로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다가 이런 주장을 펴는 것은 억지"라고 반박했다.
이처럼 양측 공방이 벌어진 까닭은 보고펀드가 LG실트론 실적 악화로 투자자금 회수에 지연을 겪고, 이에 따라 투자를 위해 은행 등 금융권으로부터 빌린 인수금융의 만기가 도래했음에도 원리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보고펀드는 2007년 KTB 사모투자(PE)와 공동으로 LG실트론 지분 49%를 동부그룹으로부터 인수하면서 우리은행(950억원) 하나은행(400억원) 등을 통해 인수금융을 받았으며 최종 대출금은 2250억원에 이른다.
당초 LG실트론은 보고펀드와 같은 PEF에 매력적인 매물이었다. 그러나 투자 직후인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1년 하반기 유럽 재정위기가 터지며 LG실트론 투자는 재앙으로 돌변했다. 태양광 사업이 부진에 빠진 데다 반도체 웨이퍼 시황이 나빠진 것이다. LG실트론 실적은 2011년 매출 1조934억원, 영업이익 1844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8503억원, 영업손실 179억원으로 추락했다.
향후 LG실트론을 둘러싼 채권단-보고펀드-LG그룹 간 셈법은 복잡해질 전망이다.
채권단은 이날 만기가 돌아오는 인수금융 2250억원에 대해 만기연장을 거부한 상태다. 이에 따라 채권단은 채무불이행에 따른 반대급부로 담보로 잡고
한편 변양호 보고펀드 대표는 2003년 '카드 사태' 당시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을 맡아 사태 해결을 위해 LG그룹으로부터 그룹이 보유하고 있던 옛 LG카드와 LG투자증권 등 금융업 포기 선언을 이끌어낸 바 있다.
[한우람 기자 /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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