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들은 지난 23일 이사회에서 진상조사위 설치를 주장했지만 금융감독원이 특별검사를 지연ㆍ지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고, 강력한 경영진 반대에 부딪치자 생각을 바꾼 것이다. 이에 따라 이사회에서는 경영 안정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안건만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진상조사위 설치는 없던 일이 됐지만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갈등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사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감사보고서 채택을 놓고 양측은 여전히 팽팽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건호 국민은행장은 30일 이사회에서 특별감사보고서 채택을 밀어붙이겠다는 방침이다. 경영감사부에서 사실 관계를 조사해 작성한 특별감사보고서에는 주 전산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중요 정보를 고의로 누락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행장은 "감사보고서가 나와 있으니 이사회에서는 일단 접수하고 해당 보고서에 문제가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며 "접수 자체를 못하게 되면 의사결정 과정상 투명성에 결함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0일 이사회에서는 감사보고서를 접수해달라고 설득할 예정"이라며 "사외이사들이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행장 측은 정병기 상임감사위원이 조사한 감사보고서를 바탕으로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한 상황이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진상조사위 설치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사외이사들과 강구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30일 이사회에서도 협의가 안 된다면 국민은행은 주 전산시스템을 교체하는 이사회 결정에 대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진상조사위 설치 주장을 철회한 사외이사들은 감사보고서 채택에는 여전히 반대하고 있다. 다만 30일 이사회에서 장기화되는 갈등을 수습할 만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 한 사외이사는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기는 힘들다"면서도 "상황이 다소 변하고 있다"며 극적 협력 가능성도 내비쳤다.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사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고 있다. 사태 해결 책임을 이 행장에게 맡긴 채 최대한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임 회장은 26일 이 행장 등 국민은행 사내이사들과 만나 사태 수습을 논의했지만 "사태 해결에 힘써달라"는 원론적인 지시만 했을 뿐이다. 임 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이번 사태로 인해 조직 이미지가 훼손돼서는 안 된다. 이 행장이 알아서
금융권 관계자는 "임 회장과 이 행장이 사태 해결을 위해 긴밀한 협조에 나서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며 "위기일수록 협조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갈등 설이 지속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했다.
[박용범 기자 / 안정훈 기자 / 송민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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