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권 장세가 장기화로 소위 가치주 투자전략이 인기몰이를 하는 반면 성장세가 둔화된 대형주 중심 투자전략은 외면받고 있는 데 따른 지각변동으로 분석된다.
9일 매일경제신문이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의뢰해 국내 주식형 펀드(ETF 포함) 자금 흐름을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미래에셋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 등에서 자금이 대거 이탈한 것으로 집계됐다.
회사별로 살펴보면 연초 이후 미래에셋자산운용에서 1조7390억원이 유출돼 이탈 규모가 가장 컸고 한국운용과 삼성자산운용에서도 각각 1525억원, 1022억원이 빠져나갔다.
이들 운용사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가치투자 전략을 추구하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과 신영자산운용으로 유입됐다. 실제 같은 기간 한투밸류와 신영자산운용으로 유입된 자금 규모는 각각 2793억원, 2083억원에 이르렀다. 국내 주식형 펀드를 운용하는 41개 자산운용사 중 올해 들어 설정액 규모가 1000억원 이상 증가한 회사는 이들 두 회사를 포함해 5개사에 불과하다.
올해 들어 자금 이탈 규모가 컸던 미래에셋과 한국운용 등은 모두 대형주를 중심으로 투자해 시장 수익률을 초과하는 성과를 추구하는 전략으로 명성이 높은 운용사들이다. 따라서 이들 회사에서 자금이 이탈한 것은 투자자들이 올해 대형주 전망을 어둡게 보고 투자를 꺼린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이들 회사 주식형 펀드 중 자금 유출 규모가 큰 펀드를 살펴보면 미래에셋 '미래에셋TIGER200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주식)' 설정액이 1조5059억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자산운용에선 '삼성KODEX200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주식]'(-5200억원), 한국운용에선 '한국투자KINDEX200증권상장지수투자신탁(주식)'(-1750억원) 유출액이 가장 컸다. 이들 펀드는 모두 대형주로 구성된 코스피200 종목에 투자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반면 설정액이 증가한 한투밸류에선 이 회사 대표 펀드인 '한국밸류10년투자증권투자신탁 1(주식)(모)' 설정액이 1175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신영자산운용에선 △신영마라톤증권투자신탁A 1(주식) 755억원 증가 △신영마라톤증권투자신탁(주식) 644억원 증가 △신영밸류고배당증권투자신탁(주식) 608억원 증가 등 3개 주력 상품으로 자금이 고루 유입됐다.
원종준 라임투자자문 대표는 "대형주 펀드에서 이탈한 자금이 중소형주 펀드로 유입되는 것이 현재 주식시장 자금 트렌드"라며 "가치주 펀드에 지나친 쏠림이 염려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이들 운용사가 시중 자금을 흡수하고 있는 배경에는 역시 든든한 장기 성과가 자리 잡고 있다. 한투밸류는 최근 3년간 수익률(작년 말 기준)이 37.26%로 전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5000억원을 넘는 자산운용사 중 성과가 가장 우수했다. 신영자산운용도 같은 기간 15.25% 수익률을 기록하며 박스권 장세에서도 견조한 성과
반면 미래에셋(-12.07%), 한국운용(-6.59%), 삼성자산운용(-1.28%)은 부진한 모습이었다.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며 안정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인덱스펀드 분야 강자인 교보악사자산운용으로 2794억원이 유입된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시장을 이기기 어려운 만큼 적어도 시장 수익률을 하회하는 상황만은 피하겠다는 투자자들의 소극적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오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