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메리츠자산운용 새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된 존 리 대표(56ㆍ한국명 이정복)가 기존 자산운용사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 관심을 끌고 있다.
리 대표는 "다른 운용사가 어떤 주식을 사고파는지 국내 증시가 매일 얼마나 오르고 내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중요한 것은 좋은 기업을 찾아 투자한 후 '깔고 앉는 것(수익이 날 때까지 오래 기다리는 것)' "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를 만난 4일 코스피가 급락했지만 리 대표는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리 대표가 취임한 후 언론과 대면 인터뷰를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 대표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잔뼈가 굵은 펀드매니저다. 미국 뉴욕대를 졸업한 뒤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클라크(Scudder Stevens and Clark)에서 '더 코리아 펀드(The Korea Fund)'를 운용하며 주목받았다. 이 펀드는 한국 주식에 투자하는 세계 최초의 뮤추얼 펀드였다. 이후 라자드자산운용에서 기업지배구조개선 펀드를 운용하기도 했다.
리 대표가 한국 기업에 둥지를 튼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리 대표는 불과 1개월 반 만에 회사를 송두리째 바꿔 놨다.
우선 여의도를 떠나 북촌로로 본사를 옮겼고, 크고 화려한 사장실은 아예 만들지 않았다. 리 대표 집무실은 일반 직원들의 업무 공간과 다를 바 없이 섞여 있다. 팀장, 본부장 직급을 없애고 보고체계를 단순화했다.
그는 "직원들이 사장실에 불쑥 들어와서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도입하고 싶었다"며 "직원들도 기꺼이 변화를 즐긴다"고 말했다.
투자 철학도 명료하다. 그는 "주식을 사고파는 타이밍이 아니라 좋은 회사를 얼마나 많이 찾아내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리 대표는 실제로 코리아 펀드를 운용하는 동안 투자 종목의 평균 보유 기간이 7~8년에 달했을 정도로 저평가주를 발굴해 장기 투자하는 운용 스타일로 유명했다.
그는 당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를 각각 2만원대와 3만원대에 매입한 후 15년간 한 주도 팔지 않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메리츠자산운용이 수시로 수익률을 보고하도록 하는 기관의 자금을 아예 받지 않은 것도 그의 철학 때문이다.
그는 "한국은 펀드 숫자가 너무 많다"며 "한번 만든 펀드가 100년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진출에 대한 계획도 내비쳤다. 리 대표는 "미국 현지에 펀드를 직접 만들어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지법인 진출을 내년쯤 본격화할 것"이라며 "트랙레코
리 대표는 "외국계와 국내 자산운용사의 장점을 접목시키고 싶다"며 "메리츠자산운용은 젊은 조직인 데다 규모도 크지 않아 변화와 혁신을 시도하는 데 가장 적합한 회사"라며 "이제야 거꾸로 가던 기차를 멈춰 세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은아 기자 / 사진 = 김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