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친코’ 윤여정 스틸. 사진|애플TV+ |
“배우는 편안하게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절실해서, 먹고 살려고 했다. 그럼에도 부족했기 때문에...그렇게 그냥 많이, 치열하게 노력해왔다. 그러다 어느새 깊이 (연기를) 사랑하게 됐다. 민폐가 되지 않을 때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후 인터뷰 中)”
↑ ’미나리’ 윤여정 스틸. 사진|판씨네마 |
초심으로 돌아가 연기 열정을 불태워 완성한 캐릭터가 바로 ‘미나리’ 속 순자였다. 딸 모니카(한예리 분)를 위해 손주를 돌보러 미국으로 건너온 할머니 ‘순자’는 한없이 초라하고 거친 현실 속에서도 어떻게든 꿈과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딸의 가족을 응원하며 보탬이 되고자 하는 전통적인 조력자인 동시에, 할머니가 못마땅해 매일 소동을 일으키는 손자 ‘데이빗’의 절친이다. 손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 정감 가는 구수함과 윤여정 특유의 개성이 입혀져 영화의 유일한 환기구가 되는 인물.
윤여정은 별다른 기교 없이 웃음과 눈물 그리고 여운까지, 감정의 폭발을 유발하는 모든 구간의 중심에서 관록의 열연을 펼친다. 여기에는 젊은 시절 미국 플로리다로 건너가 9년간 생활했던 윤여정의 (이민자로서의) 경험과 미국에 살고 있는 두 아들에 대한 사랑, 생전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줬던 증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함이 담겨 있다. 그 진정성은 전 세계에 닿아 윤여정은 한국 배우 최초로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거머쥐며 50년 연기 인생의 정점을 맞았다.
그런 그의 신작 ‘파친코’는 오스카에서 눈부신 성과를 내기 전 이미 촬영을 마친 작품이다. ‘미나리’로 한 차례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그는 공교롭게도 다시 이민자 역할을 맡아 또 한 번 도전에 나선다. 이번엔 ‘선자’였다.
↑ 배우 윤여정. 사진|연합뉴스 |
언뜻 ‘파친코’ 선자 역시 ‘미나리’의 순자와 비슷해 보이지만, 막상 작품을 보면 금세 전혀 다른 인물임을 깨닫게 한다. 선자는 순자에 비해 훨씬 광활한 서사를 지녔고, 그만큼 우여곡절과 다채로운 감정, 압축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품고 있는 인물이다. 코고나다 감독이 선자로 완벽하게 분한 윤여정의 얼굴에서 ‘한국 역사가 담긴 지도 같았다’고 표현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일 터.
개인적인 경험이, 감정적인 공감이 윤여정을 자연스럽게 ‘순자’에 녹아들게 했다면, ‘선자’는 윤여정이 더 치열하게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고, 감명 받고 매료돼 완성시켜나갔다. 윤여정은 ‘파친코’ 기자간담회에서 “자이니치의 삶과 격동의 세월을 깊이 접하며 놀랍고 또 안타까웠다. 나의 경험과 또 다른 그녀의 무수한 경험과 경이로운 생명력 그리고 깊이를, 50년간 해왔던 나의 연기를 통해, 이 늙은 얼굴에 잘 담고 싶었다. 나의 모든 감각을 깨워 몰입하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윤여정의 선자는 강인함과 생존 의지가 강렬하다. 대사만큼 그녀의 표정과 눈빛, 분위기에서 보다 많은 걸 느끼게 한다. 디테일한 연기가 일품이다.
한 가정의 연장자로서의 노련함, 진한 인간미보단 확장된 인간의 존엄성을 담고 있다. 지독한 비극 속에서도 품위와 존엄성을 지키며 깨끗하다. 윤여정은 끝이 보이지 않는 극한의 어려움을 순자 답게 극복해낸다. 작품에 대한, 캐릭터에 대한, 역사적 아픔에 대한 그녀의 진정성이 오롯이 담긴다.
이처럼 윤여정의 연기에는 그녀
노배우 윤여정은 나영석 PD와 함께 하는 예능 ’뜻밖의 여정’으로 국내 시청자와 만난다. 계속될 윤여정의 여정에 진심을 담아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한현정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