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이하 미국 동부시간 기준) 뉴욕증시는 변동성이 커지면서 4대 대표 주가 지수가 동반 하락했습니다. 낙폭 순으로 보면 '기술주 중심' 나스닥종합주가지수가 전날보다 3.94% 떨어졌고 빅테크 비중이 높은 '대형주 중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중소형주 중심' 러셀2000 지수가 각각 3.37%, 3.30% 하락했습니다.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3.03% 떨어졌습니다. 월가 공포지수로 통하는 뉴욕증시 변동성 지수(VIX)는 하루 새 17.36% 뛰어 25.56을 가리켰습니다.
이날 무엇보다 빅테크와 반도체 기업들 매도세가 거셌습니다. 뉴욕증시 7대 간판주 중에서는 테슬라(TSLA -2.70%)를 제외한 나머지 애플(AAPL -3.77%)과 마이크로소프트(MSFT -3.86%), 알파벳(GOOG -5.44%), 아마존(AMZN -4.76%), 넷플릭스(NFLX -4.57%), 메타(META -4.15%) 등이 각각 4~5% 대 하락했습니다. 앞서 골드만삭스의 에릭 세리던 연구원은 앞으로 수익 둔화 가능성을 지적하면서 FAANG(메타·애플·아마존·넷플릭스·알파벳) 종목들 주가가 향후 20% 추가하락할 것이라는 경고를 낸 바 있습니다.
반도체 부문은 더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가 6% 가까운 5.81% 낙폭을 기록했는데 엔비디아(NVDA -9.23%)와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 -6.17%), 인텔(INTC -4.39%) 등 반도체 대장주 매도세가 집중된 탓입니다.
다만 이날 매도세는 시장이 과민 반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찰스 슈왑의 리즈 앤 손더스 수석 투자 전략가는 "파월 의장이 '연준과 싸우지 마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 것은 맞지만 오늘 매도세는 과한 감정의 결과이며 가라앉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시장이 요동친 이유는 파월 의장에 예상보다 더 강경한 표현을 써가며 은연 중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내비친 탓입니다. 연준 연례 행사인 잭슨 홀 미팅에 나선 파월 의장은 연설 시작부터 "나는 오늘 조금 더 짧고 간결하게,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겠다" 면서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그는 "역사는 성급한 완화 정책에 대한 경고를 보여줬다"면서 "물가 상승세를 늦추기 위해서 더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에 다소 불행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물가 안정을 위해 당분간은 금리 수준이 높게 이어질 것" 이라면서 "지난 6월 경제전망(SEP) 때 연준 위원들은 내년 말까지 기준금리 수준이 4%를 살짝 밑돌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 수치는 오는 9월 회의에서 경제 지표를 반영해 수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앞서 이달 18일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가 오는 9월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와 관련해 "나는 기준금리 75bp(1bp=0.01%p) 인상를 지지한다"면서 "금리 인상 시기를 내년까지 오래 끌려고 하기보다 올해 연말까지 목표 금리를 3.75~4.00% 범위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매파 발언을 한 것과 비슷한 입장으로 풀이됩니다.
무엇보다 파월 의장은 과거 1970~1980년대 인플레 역사를 언급하면서 과감한 긴축 정책을 실시한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을 떠올렸습니다. 파월 의장은 역사를 통해 첫째로 오늘날 인플레는 전세계 공통적 현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 무조건적인 임무라는 점, 둘째로 사람들의 기대 인플레가 연준 목표(2%)와 발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셋째로 낮고 안정적인 수준으로 물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매우 긴축적인 통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이전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앨런 그린스펀·볼커가 언급됐는데 특히 볼커 전 의장은 두 번이나 거론했습니다. 볼커 전 의장은 '토요일 밤의 학살'로 불리는 기준금리 대폭 인상 조치로 물가를 잡은 것으로 유명한데, 앞서 파월 의장은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50bp올리는 것)을 발표한 5월 FOMC 기자회견 때 볼커 의장을 언급한 후 6월 FOMC 회의 부터는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75bp인상)을 이어온 바 있습니다.
한편 채권 시장에서는 '시중 장기 금리 가이드라인'역할을 하는 미국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전날보다 1bp올라 3.04%에 거래를 마감했습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10월물은 0.58%올라 배럴 당 93.06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를 경고했지만 일단 금 9월물은 전날보다 1.21% 떨어져 1트라이온스당 1736.5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자꾸 올라서 걱정인데요. 26일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달러 인덱스가 전날보다 0.34% 오른 108.84에 거래됐습니다. 연준이 고강도 긴축 정책을 선언한 만큼 적어도 연말까지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한편, 뉴욕증시 바깥에서는 여전히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자국 군대 규모 증강 법안에 서명한 후 '세계의 곡물창고' 우크라이나를 강공하자 린다 토마스-그린필드 UN주재 미국 대사는 푸틴 대통령을 향해 "세계가 전례 없는 식량 안보 위기에 직면해 곡물 가격이 치솟고 이에 따른 경제 위기 탓에 정치·사회적 불안정이 우려된다"고 비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