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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직시하면 그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 유명한 대사죠. 바람은 계산하는 게 아니라 극복하는 것. 그런데 현실 공직사회에서 바람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 합니다.
혹시 '중·국·산·고·기'라는 신조어 들어보셨습니까. 중소기업벤처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기획재정부. 이 다섯 부처의 스트레스와 업무 강도가 유독 심해 앞글자를 따서 만든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핵심부처를 중심으로 '탈(脫) 공직' 바람이 일고 있습니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기재부를 떠난 공무원이 100명에 육박하고, 산업부는 올해 9월까지 예순 명 이상이 떠났거든요.
민주당에서는 전 정부에서도 비슷한 인원이 산업부를 나갔다고 반박하지만, 조직의 위상이 예전만 못한 건 사실이지요. 과거 기재부는 정부의 주요 사무에서 빠지는 일이 없다고 해서 '알파와 오메가', '정부부처의 꽃'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지원자 미달 부처가 됐습니다. 지난 5급 공채 수습사무관 수요 인원은 23명이었는데, 1지망 지원자가 달랑 8명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굴욕까지 겪었거든요.
여러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긴급재난지원금이나 추가경정예산·부동산 세제처럼 굵직한 정책을, 대부분, 관련 부처가 아닌 여당이 주도하다 보니, 기재부의 의견이 묵살되는 이른바 '패싱' 논란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또 국토부는 차가운 부동산 민심으로 속앓이를 하면서 업무 피로도가, 고용노동부는 최저임금 인상이나 전 국민 고용보험제 도입 등으로 업무량이 급증해 '일을 잘해도 욕을 먹거나, 외풍이 너무 많다는 게 이들 중·국·산·고·기에서 일관되게 나오는 하소연'이라고 합니다.
2018년 '월성 원전 추가 가동 의견' 보고서를 쓴 공무원에게 '너 죽을래?'라며 즉시 가동 중단 보고서를 다시 쓰게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사건도 기억하시죠.
이래서야 공무원들이 무슨 사명감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공직자 역시 정권의 바람을 계산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극복이라는 단어가 쓰여도 안 되지 않을까요. 공무원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나 국민을 위한다는, 존재의 이유는 같으니까요.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중·국·산·고·기'를 아시나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