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익명 대화방에서 미성년자를 성착취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1년이 다 되어가는데, 온라인 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조금 더 안전해졌을까요.
취재 결과, 랜덤채팅방에서는 여전히 성인과 미성년 사이의 위험한 대화가 판치고 있는데도 이를 제재할 관련법은 부족했습니다.
심가현 기자입니다.
【 기자 】
▶ 스탠딩 : 심가현 / 기자
- "누구나 들어와 대화할 수 있는 카카오톡 오픈채팅이라는 기능이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고, 심심하다는 제목으로 직접 방을 만들어 봤는데요. 한 달 사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말을 걸었습니다."
생겨난 1:1 채팅방만 30여 개, 나잇대는 다양한데 눈에 띄는 건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의 성인 남성들입니다.
대부분이 처음 묻는 건 지역, 만나자고 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짜고짜 성적인 질문들에 만나서 직접 궁금증을 풀어주겠다는 사람부터, 전화를 하면 돈을 주겠다, 사진을 보내달라는 사람도 많습니다.
온라인 상에서 친밀감을 쌓아 벌이는 성착취 범죄를 뜻하는 온라인 그루밍은 디지털 성폭력 범죄로 분류되지만,
현행법상 실제 처벌은 성착취물 제작이나 성매매로 이어지는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 인터뷰 : 장윤미 / 변호사
- "성을 사려고 유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 성매매 등으로까지 결과 발생이 이어지지 않으면 성적인 유인 행위를 했더라도 처벌하기 어려운…."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이 줄고 온라인과 실내 활동이 늘었던 지난해, 온라인 그루밍 피해 상담 건수 중 10대는 전체의 78%에 달합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일부 랜덤채팅앱에 성인인증 절차를 추가했지만 카카오톡 오픈채팅과 같은 사각지대는 남아있습니다.
본인 인증과 신고, 대화 저장 기능이 있다는 이유인데, 판단력이 부족한 미성년이 자발적으로 나서는 부적절한 대화를 막기는 역부족입니다.
▶ 인터뷰(☎) : 여성가족부 관계자
- "개인의 사적 대화에 대해서 모니터링하거나 할 순 없고, 신고 기능이나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신고를 하면 적발해서…."
전문가들은 미성년에게 성적 의도를 가진 접근 단계부터 적발해 처벌하는 선제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아동을 위장해 사이버 공간에 잠입하는 함정 수사가 한 방법입니다.
▶ 인터뷰 : 이수정 /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 "일종의 암행어사가 생기는 거예요, 사이버 공간상에서. 지금처럼 전혀 치안력이 없는 무법천지에서 언제 어디서 적발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이…."
실제 네덜란드에서는 10대 소녀처럼 보이는 AI를 채팅사이트에 활용해 성적인 행위를 제안하는 2만여 명의 남성을 검거하기도 했습니다.
영미권 63개 국가도 이같은 수사 기법이 허용돼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범죄의도가 없는데도 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입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처벌보다 위험한 제안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할 적극적인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입니다.
MBN뉴스 심가현입니다. [gohyun@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