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제 죄가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배우 박신양의 죄는 무엇일까.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바로 ‘연기를 씹어먹었다’는 점이다. 영화 ‘유리’(1996)로 연예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그는 이후에도 묵직한 연기력과 어떤 역도 소화해내는 커버력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됐다.
특히나 브라운관에서는 그의 진가가 더욱 빛을 발했다. 재벌2세로 분해 “애기야 가자”라는 불세출의 유행어를 남기는가 하면, 노숙자, 검사, 의사 등 각종 직업군을 넘나들며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모았다.
연기인생 30년의 ‘천생 배우’ 박신양의 드라마 필모그래피를 살펴봤다.
↑ 디자인=이주영 |
◇ ‘사과꽃향기’
1986년 연극 ‘햄릿’으로 연기에 입문한 박신양은 10년 뒤 MBC ‘사과꽃향기’로 브라운관에 입성했다. 당시 ‘유리’로 큰 화제가 됐던 터라 그의 드라마 출연은 더욱 화제가 됐다.
‘사과꽃향기’는 능력있고 야망있는 방송기자 경주(김혜수 분)를 주인공으로 그의 자매들의 얘기를 다루고 있다. 박신양은 극 중 케이블TV 보도채널의 신참기자이자 경주의 동료 백성덕 역을 맡았다.
신예에 불과했던 박신양이 주연으로 파격캐스팅된 데에는 김혜수의 공이 컸다. 박신양의 연기력을 높게 평가한 김혜수가 제작진에게 그를 추천했다고. 박신양은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김혜수 소개를 받아 ‘사과꽃 향기’ PD를 만났고, 출연하게 됐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사랑한다면’
이듬해 박신양은 MBC '사랑한다면'(1997)으로 브라운관을 다시 찾았다. 톱스타였던 심은하와 호흡을 맞추며 인기 배우로서 자리를 다졌다.
‘사랑한다면’은 전통적 가치관을 지닌 불교 가정에서 자란 남자 문동휘(박신양 분)와 기독교 집안의 여자 김영희(심은하 분)의 사랑과 갈등, 파국, 용서와 화해를 그린 작품으로 주말드라마 최초 외주제작돼 높은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작품은 아쉽게도 조기종영됐다. 경쟁작인 KBS2 ‘첫사랑’이 전설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했고, ‘사랑한다면’은 그 그늘에 가려져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해 결국 퇴장하고 말았다.
◇ ‘내마음을 뺏어봐’
박신양에게 ‘청춘스타’란 수식어를 더해준 건 1998년에 방송된 SBS ‘내마음을 뺏어봐’였다. 이 작품은 젊은 세대를 겨냥한 멜로드라마로 청춘들의 사랑, 갈등, 우정을 그렸다.
박신양은 이 작품에서 함께 자라며 친남매 이상으로 정을 나눈 한예린(김남주 분)을 사랑하는 외과 레지던트 ‘윤석찬’으로 분해 다정하면서도 부드러운 매력을 발산했다. 그는 김남주, 한재석, 전지현 등 당시 최고 청춘스타들과 호흡을 맞추며 작품 인기의 견인차 구실을 했다.
◇ ‘파리의 연인’
박신양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SBS ‘파리의 연인’(2004)이다. 재벌2세 한기주 역을 맡아 ‘츤데레’ 전형을 보여주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한기주 역에 낙점된 건 아니었다. 배용준, 이정재, 이서진 등이 한기주 역 물망에 올랐으나 모두 고사하며 행운이 박신양에게 돌아간 것. 그는 상대역 김정은과 함께 환상의 호흡을 펼치며 전국을 ‘파리의 연인’ 신드롬에 몰아넣었다.
당시 시청률은 경이로울 정도였다. 마지막회가 최고시청률 57.6%(닐슨코리아 집계)를 찍으며 엄청난 인기를 입증했다. 또한 박신양은 그해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극 중 한기주와 강태영(김정은 분)의 한낱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결말이 큰 논란이 되면서 최고 ‘용두사미’ 작품이란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 ‘쩐의 전쟁’
로맨스물에 강한 면모를 보이던 그는 캐릭터적인 방향을 선회하며 SBS ‘쩐의 전쟁’(2007)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사채업을 정면으로 다룬 이 작품은 아버지 빚으로 사채업자가 된 금나라(박신양 분)의 롤러코스터같은 일대기를 다뤘다.
박신양은 ‘금나라’로 분해 작품의 중추적인 구실을 했다. 그의 명연기 덕분에 ‘쩐의 전쟁’은 방송 3회만에 시청률 20%를 돌파했고, 평균시청률 35%를 기록하며 지상파3사 수목극 중 1위를 지켜냈다. 또한 애초 16부작이었지만 대단한 인기 덕에 4회 연장돼 20부작으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박신양은 ‘파리의 연인’에 이어 이 작품으로 2007 연기대상 대상의 영예를 또 한 번 누릴 수 있게 됐다.
◇ ‘바람의 화원’
이듬해 그가 출연한 KBS ‘바람의 화원’은 신윤복이 사실 여자였다는 허구적 설정으로 방송 전부터 높은 관심을 받은 작품. 박신양은 극중 신윤복의 라이벌이자 정인인 화가 김홍도로 출연해 비밀스러운 로맨스를 엮어갔다.
박신양은 이 작품으로 ‘쩐의 전쟁’ 장태유 PD와 또 한 번 손을 잡았다. 또한 상대역 문근영과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로맨틱한 ‘케미(케미스트리 준말)’를 펼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 ‘싸인’
2011년 방송된 SBS ‘싸인’은 박신양이 장르물에도 적합한 배우라는 걸 입증한 사례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시신을 부검하며 사인을 밝혀내는 법의관들의 얘기를 다룬 작품으로 tvN ‘시그널’로 유명한 김은희 작가의 히트작이기도 하다.
박신양은 극중 법의학자 윤지훈 역을 맡아 차갑고 냉철한 인물로 변신에 성공했다. 전작 ‘쩐의 전쟁’이나 ‘비밀의 화원’에서 보여준 능구렁이 같은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변신에는 그의 노력이 숨겨져 있었다. 박신양은 당시 법의학자를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실제 법의관들과 함께 먹고 자며 수차례 부검에 참관하고 그들의 가족까지 만나며 A4 160장에 달하는 일지를 작성했다고.
◇ ‘동네변호사 조들호’
팔색조 박신양의 변신은 계속된다. KBS2 ‘동네변호사 조들호’에서 최고의 능력을 자랑하지만 유들유들한 성격으로 능구렁이의 전형을 보여준 조들호로 옷을 갈아입은 것.
그는 극 중 검사에서 노숙자로 전락했다가 다시 변호사로 재기한 조들호를 기가 막히게 재현해내면서 작품의 생동감을 살려냈다. ‘원맨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극 전반을 주무르고 있는 것.
그동안 늪을 걸었던 KBS 월화드라마 역시 심폐소생했다. 전작 ‘베이비시터’ ‘무림학교’ 등으로 3%대 시청률을 보였던 이 시간대가 시청률 10% 대까지 껑충 뛰어오르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박신양의 연기 내공이 통한다는 증거였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