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여수정 기자] 그 흔한 대사도 없고 배경음악도 없다. 오직 등장인물들의 상황과 수화만이 극을 이끌어나간다. 보통의 영화와 달라도 너무 다른 ‘트라이브’. 다른 점이 격하게 신선하지만 일반 관객에겐 난해할 수도 지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해하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오는 29일 개봉예정인 ‘트라이브’는 기숙학교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가 학교를 휘어잡고 있는 조직 안에서 겪게 되는 사랑, 증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개봉 전부터 이미 대사, 자막, 음악이 없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소리와 대사가 없기에 차도를 지나가는 자동차와 바람 소리 등이 배경음악이자 대사가 되곤 한다. 그래서 더욱 장면의 소중함이 느껴지고 스크린에서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심지어 침까지 함부로 삼키지 못한다.
음소거의 언어인 수화로 주인공들은 대화한다. 답답하고 난해하고 지루하지만, 관객들의 몰입도는 100%다. 상황만으로도 충분한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도 신선해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성관계, 폭력 등이 다소 자극적이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지는 일이라 그리 놀라울 일도 아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트라이브’ 관람등급을 청소년관람불가로 선정했다.
영등위에 따르면 주제와 선정성,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은 ‘높음’이고 약물은 ‘다소높음’ 대사만 ‘낮음’이다. 즉, 영상의 표현에 있어 선정적인 부분은 성적 행위 등의 묘사가 노골적이며 자극적인 표현이 있고, 그 외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및 주제 부분에 있어서도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청소년이 관람하지 못하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숙학교를 배경으로 삼았고 학생들이 주인공이라는 점을 볼 때 ‘한공주’ ‘18-우리들의 성장 느와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처럼 주인공이 정작 영화를 못 본다는 게 좀 많이 아쉽다. 하지만 충분히 자극적인 부분과 모방위험이 있기에 영등위의 판정 등급이 나름대로 이해는 간다.
이보다 더욱 문제될 건 포스터다. 앞서 ‘님포매니악’이 포스터 상 최초로 블러 처리돼 관객을 만난 바 있다. 당시 절정에 다다른 주인공들의 얼굴이 블러 처리 됐다. 이와 마찬가지로 ‘트라이브’도 영등위로 유해성 판정을 받아 블러가 아닌 일부분을 가렸다.
영등위에서 문제된 ‘트라이브’ 포스터에는 남녀가 알몸으로 서로를 마주고 있다. ‘소리 없는, 가장 강렬한 언어’라는 문구가 가운데에 적혀 두 남녀가 수화 중임을 알려준다. 알몸의 남녀가 담겨있지만 중요 부위는 철저하게 가려져있다. 그럼에도 유해성 판정을 받아 고개가 갸우뚱 거려진다.
특히 해외용 포스터와 같은 이미지이지만, 남녀가 나신으로 마주 앉은 모습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한 차례 심의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여주인공의 몸을 가린 후 다 시 한 번 심의를 받았다. 그러나 이 역시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결국 유해성 있음 판정을 받고 오직 온라인에서만 공개가 가능하게 됐다.
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마주 앉아 있다는 것이 그저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과 메시지가 아닌 오직 눈에 보이는 부분만으로 이 같은 판정을 내린 게 안타깝고, 더 감각적인 포스터를 보지 못하는 관객들 입장에서도 아쉽다.
메인 포스터는 물론 김성진 작가의 티저 포스터도 유해성 판단을 받았다. 더욱 놀라운 건 오직 한국에서만 이런 판정을 받았다. 우크라이나와 체코, 프랑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는 오리지널 버전으로 그대로 사용된다. 이에 연출을 맡은 미로슬라브 슬라보슈비츠키 감독은 “한국 영등위의 매우 엄격한 기준에 대해 유감이다. 특히 펜 드로잉으로 완성된 티저 포스터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매우 아름답고 시적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 중에 오리지널 포스터 속 이미지가 문제가 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정말 유감스럽고 아쉬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청소년관람불가로라도 ‘트라이브’가 관객을 만난다는 게 다행이다. 그러나 이보다 오직 온라인에서만 공개 가능한 두 개의 포스터가 못내 아쉽다. 직접 검색을 해야만 볼 수 있으니. 영화의 메시지, 느낌을 함축적으로 담은 게 포스터다. 하지만 오직 한국 관객들만 ‘트라이브’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꼴이라, 감각적이면서도 난해한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접하지 못하는 셈이라 안타깝다.
개봉되는 몇 개의 작품이 늘 영등위와 충돌하고 관객을 만날 기회의 장이 좁아지고 있다. 영등위 입장에선 좀 더 평범한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겠지만, 관객의 골라보는 자유와 선택하는 자유는 지켜줘야 하며 좀 더 열린 시선으로 작품을 선정하는 게 영화산업, 문화생활의 질을 높이는 길이다.
여수정 기자 luxurysj@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 사진=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