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오전 2시. 신해철의 빈소가 마련될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앞에는 벌써부터 촛불이 하나 둘 켜졌다. 고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달려온 팬들이 삼삼오오 모여 그의 넋을 위로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 앞에는 신해철의 앨범과 그의 공연 포스터가 놓였다. 그의 음악도 흘러나오고 있다. 팬들에게 그의 죽음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이다. 그가 지금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만 같다.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신림동에서 왔다는 김우일(36) 씨는 "20년간 그의 노래를 듣고 불렀다.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중환자실에 있는 그가 걱정돼 어제 오후 인천에서 왔다는 김우중(36) 씨는 "결국 얼굴은 못봤지만 공교롭게도 병원에서 그의 별세 소식을 듣고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그는 부모님보다 내게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신해철은 얼마 전 위 경련 증세로 서울 가락동에 있는 S병원을 찾았다가 장 협착증 진단을 받고 그곳에서 작은 수술을 했다. 그 뒤 심장 쪽이 아프다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다가 해당 병원에 22일 새벽 재입원, 응급실에 머물던 중 심장이 멈춰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이후 서울 아산병원으로 옮겨졌다. 서울 아산병원에서 다시 복강 내 장수술 및 심막수술을 받은 그는 심장 기능을 잠시 회복했으나 6일째 의식은 찾지 못했던 상태였다.
당시 아산병원 담당 의료진은 "수술 후 의식이 돌아오기까지 72시간은 지켜봐야 한다"고 했던 터다. 72시간의 기한은 25일 오후 11시께였다. 이 시간을 훌쩍 넘겼음에도 별다른 차도가 없자 그가 사실상 뇌사 상태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소속사 측은 이를 부인했었다. 그가 언제라도 깨어나길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었다.
신해철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던 KCA엔터테인먼트 강용호 이사는 "이렇게 빨리 갈 줄 몰랐다. 뭐가 그리 급했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쏟았다. 마음의 준비도 없었다. 강 이사는 "병원에서 좋지 않다고는 했지만 그들은 항상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법이니까 믿고 싶지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신해철은 198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밴드 무한궤도 보컬로 데뷔했다. 이후 솔로 가수와 밴드 넥스트로 활동했다. '그대에게', '슬픈 표정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인형의 기사' 등 다수 히트곡을 남겼다.
그의 노래는 영원히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남아 이어질 것이다. 신해철은 한국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자취를 남긴 별이다. 반짝반짝 빛나기만 하던 별은 더 큰 태양이 뜨면 가려진다. 하지만 행동하는 양심, 우리의 의식에 살아있는 별은 쉽게 지지 않는다. 적어도 음악 팬들에게 '마왕' 신해철은 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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