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으로 보면 데이브레이크(Daybreak)는 밴드씬에서도 내로라하는 훤칠한 외모의 네 명이 뭉쳤다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첫인상만으로도 강렬한 이미지를 뿜어내는 여타 밴드들에 비하면 훈훈한 ‘흔남’에 더 가깝다. 그 점에선 ‘비범함’과 ‘평범함’ 사이 어느 부근에 존재하는 팀이라 하겠다.
하지만 라이브 무대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은 가히 독보적인 수준이다. 모던팝 그룹다운 번듯한 이미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데이브레이크가 보여주는 합을 보고 있노라면, 반쯤 정신줄(?)을 놓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쯤 되면 반전의 팀이라 단언할 만 하다.
지난 7월, 모처럼 발매한 새 앨범 ‘큐브’에서 역시 기존 데이브레이크의 음악과 또 다른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모던팝에 가까운 락 음악 위주로 활동했던 이들로서는 데뷔 후 처음으로 뉴웨이브 장르에 도전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변화의 물꼬는 가벼운 마음에서 터졌다. “정규 앨범 작업들을 계속 하면서 편하고 자유롭게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르적 특성이나 가사적인 부분, 연주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걸 편하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도하게 됐죠.”(이원석)
보다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가기에 앞서 생각한 주제는 “지금 유행하고 있는 음악들의 원조를 고민해보자”는 것이었고, 그게 바로 80년대 뉴웨이브 음악이었던 것.
“신스(신디사이저) 작업을 좀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진짜 좋아했던 음악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80년대 음악이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요즘 시대 젊은 뮤지션들이 다시 하고 있고... 진짜 오리지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김선일)
“이번 앨범을 준비하기 전, 경연 프로그램 등에서 뉴웨이브를 차용해서 공연하곤 했는데, 우리 스스로도 만족스러웠고 곡에 대한 반응도 나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걸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의견이 모아졌죠.”(김장원)
시작은 좋았지만 작업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김장원은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뉴웨이브가 정말 공부할 게 많은 장르더라”면서도 “더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 해보는 작업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번 결과물을 완성하는 데 1년 반 넘게 걸렸다”고 했다.
처음 곡을 접하면 기존 데이브레이크의 색과 조금은 다른 탓에 낯선 느낌도 들지만 새 옷을 입는다고 사람이 달라지는 게 아니듯, 데이브레이크는 역시 데이브레이크다.
“기존 데이브레이크 색을 버렸거나 틀었다는 생각으로 한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새로운 시도였죠. 하지만 두려움은 없었어요. 새로운 걸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고, 내부적으로도 그런 게 필요했던 시기가 아닌가 싶었거든요.”(이원석)
20대 초중반, 각자의 음악을 하다 만나 데이브레이크로 의기투합한 지 어느새 9년. 팀 결성 10주년을 앞둔 만큼 데이브레이크의 호흡은 그야말로 ‘눈빛만 봐도 알 만한’ 수준이 됐지만, 창작 활동이 계속 돼야 하는 뮤지션으로서는 자칫 정체될 수도 있는, ‘진짜’ 위기가 올 수도 있는 시기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리프레쉬 되는 계기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께 음악을 해온 시간이 길어지면서 합이 잘 맞고 틀이 정립된 건 좋은 일이지만, 음악을 하는 데 있어서는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정체가 반복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했던 시기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이 나오게 된 결정적인 계기죠.”(이원석)
일각에서는 이번 앨범을 두고 타 뮤지션의 곡과 비교하기도 하지만, 김선일은 “현존하는 어떤 음악들과 맞닿아있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지만, 그 역시도 기존 유행한 음악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지 않나”며 “타이밍적으로 맞아 떨어진 게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데브가 변했다 혹은 다른 길을 가려 한다는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해 정규 앨범이 아닌 프로젝트 성격의 앨범으로 기획했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시도이자 재미있는 실험 정도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영혼을 팔아 모든 걸 담아 했다기 보다는, 우리가 즐겁게 작업한 만큼 듣는 분들도 즐겁게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기존 우리 색은 정규 앨범에서 반갑게 만나보실 수 있을 거에요.”(이원석)
몸을 들썩이게 하는 경쾌하고 신나는 리듬에 문득 궁금해졌다. 데이브레이크 멤버 중 제일 잘 노는(?) 사람은 누구일까.
“원석형은 마이크를 들고 있고 손발이 자유로우니까 잘 놀지만, 악기 내려놓고 작정하고 놀아보면 (김)선일형이 아닐까 싶어요. 선일형의 베이스를 가끔 뺏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리듬감이 너무 좋으셔서(웃음). 특히 이번 ‘큐브’ 음악은 제일 잘 놀 것 같아요.”(김장원)
“기본적으로 동경하는 게, 본능에 충실하는 아티스트에요. 너무 이성적이면 못 하는 게 너무 많으니까 하하.”(김선일)
“생각해보면, 우리는 홍대 클럽을 다니거나 소위 ‘날라리’처럼 노는 사람은 아닌 것 같거든요. 한 번도 그렇게 살아본 적이 없죠. 그런데 그렇게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나? 그래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놀고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이원석)
하지만 다가오는 30, 31일 이틀간 서울 올림픽공원 88호수 수변무대에서 펼쳐지는 단독 콘서트 ‘써머 매드니스 2014’에서는 제대로, 미친듯이 놀아볼 계획이다. 이들은 “지난 공연과 차별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며 “야외의 특성에 맞는 특수효과 등 공연 연출에 신경을 쓰고 있고, 더 시원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레퍼토리와 편곡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셀 수 없이 많았던 지난 공연들 중, 진짜 단단히 ‘미쳤다’ 싶은 기억을 떠올려달라 하자 김선일은 “미친 건 아니고, 사고이긴 한데...”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 해 ‘매드니스 2013’ 공연 중 무대에서 추락했던 것.
“암전 상태였어요.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가운데, 바닥에 야광 테이프로 표시가 돼 있었는데 동선 중 테이프가 안 붙어있던 곳이 있었어요. 당연히 돌출무대가 앞에 있을 거라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발을 내딛었는데 그대로 밑으로 뚝 떨어졌죠.”
에피소드처럼 이야기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사고. 이원석은 “떨어진 것 자체는 사고인데, 그 다음에도 끝까지 공연을 다 했다는 게 미친 것”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김선일은 “순간적으로 척추에 충격이 왔던 것 같긴 한데, 다행히 공연을 잘 마쳤고 지금은 물론 괜찮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 ‘무대에서’ 자아를 잠시 놓는 건 “흔한 일”이라는 데이브레이크. 특정 무대에서만 미친 듯이 연주하는 게 아니라 어떤 무대라도 ‘미치도록’ 연주한다는 건 이들에게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기억에 남는 팬들의 행위(?)는 어떤 게 있을까. 이원석은 “작년 부산 락페스티벌인가. ‘들었다 놨다’를 부르는데 슬랭(관객들끼리 서로 몸을 세게 부딪치며 곡을 즐기는 것)을 하는 남성분들의 액션이 기억에 남는다”며 웃어보였다.
“‘들었다놨다’는 슬랭을 하기엔 다소 애매할 수 있는데, 그 타이밍에 맞춰 몸을 부딪치며 노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에게 더 신나는 락 넘버도 여러 개 있으니, 이번 공연에서도 신나게 즐겨주시면 좋겠습니다.”
psyon@mk.co.kr/사진 해피로봇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