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R.ef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었음은 사실이다. ‘대놓고 자랑을 해달라’는 에 두 사람은 잠시 20여년 전으로 돌아갔다.
“방송에서 특별대우를 해줬던 건 분명하다. 한곡 씩만 부르게 돼 있는 순위프로그램에서 기본적으로 세곡씩 불렀으니까. 우리가 나가야 시청률이 유지된다고 그러더라.”(성대현)
실제로 R.ef는 1996년 당시 2집 앨범이 나오자마자 KBS ‘가요톱10’에서 팬들의 투표로 타이틀곡을 결정하는 이벤트를 특별히 구성해 줄 만큼 인기가 대단했다.
“우리는 5주 연속으로 1위를 일부러 안주기도 했다. 3주하면 1위 후보에서 빼고 다른 곡을 순위권에 집어넣는거다. 계속 출연시키기 위해서. 라디오에서는 기본적으로 앨범이 나오면 수록곡 전부를 들려주는 일이 많았고, 거리에서 팬 사인회를 하면 6차선 도로가 마비돼서 교통방송에 종종 언급되기도 했다.”(성대현)
이런 일들이 매일 반복됐다. 스케줄이 바쁠 때 헬기가 동원되는 일은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사생팬들도 이미 20년 전 경험했다.
다만 지금의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는 사생팬과 태도는 좀 달랐던 모양이다.
“지켜보는 정도 이상 적극적으로는 못하더라. 손으로 정성스럽게 쓴 편지를 주고 잽싸게 도망가서 먼발치 지켜보는 정도 수준이었다.”(이성욱)
앨범 판매량도 어마어마 했다. R.ef가 판 앨범 수는 공식적으로 약 380만장 가량 된다. 물론 이는 공식적인 집계일 뿐 소위 짝퉁테이프 시절이던 당시 비공식적으로는 3배 이상을 웃도는 것으로 본다.
“사실 ‘상심’ 가사는 내가 썼는데 저작권협회에 등록이 안돼서‥하하”(성대현)
R.ef의 해체는 이들이 활동하던 시절의 화려함을 생각하면 다소 흐지부지 됐다.
“1998년에 마지막 콘서트를 했다. 고인이 되신 앙드레김 선생님과 영화배우 강수연씨 같은 분들이 가장 앞자리에서 우리 공연을 지켜보셨던 기억이 있다. 해체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데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회사와 관계가 악화됐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회사와 한번 관계가 틀어지고 나니 마지막까지 서로에게 충실하게 행동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연예인이 소속사의 소유물 같은 느낌이었던 것도 사실이다.”(성대현)
R.ef는 공식해체 이후 각자의 길을 걸었다. 성대현은 방송인으로 이성욱은 건축 사업가, 요식업 등 사업가의 길을 걸었고 박철우는 현재 서울 동부이촌동에 자신의 오랜 꿈이었던 LP바(Bar)를 운영 중이다.
R.ef의 새로운 도전은 이들에게 단순히 90년대 음악 유행에 편승하거나 향수에 기대 있는 수준은 아니다.
“우리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지금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다. 이들이 듣고 즐기고 함께 할 음악이 얼마나 되나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음악이나 활동 방향 역시 그 맥락과 같다. 이제 예전 우리 음악이 보고 듣는 음악이었다면 이제는 함께 따라 부르고 춤출수 있는 걸 하고 싶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이현우 기자 nobodyi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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