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속한 대국민 접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vs 민간 제약사의 비양심적인 요구"
코로나 19 백신을 개발 중인 글로벌 제약사들을 상대로 조달 계약을 체결 중인 한국 정부가 '면책 조항' 인정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3일 온라인 정례 브리핑에서 "백신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우리의 책임을 면제해달라"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면책 요구와 관련해, "이런 면책 요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 공통적으로 요청되고 있다.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백신의 유효성과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절차를 마련하고 가능한 한 좋은 협상을 통해 이에 대한 우려가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수 십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 절차를 1년으로 단축해 내놓는 백신이다보니 제약사들 입장에서는 나중에 부작용이 발생해 개별국가 국민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할 리스크를 고려하게 된다. 따라서 공급계약 초기 계약서에 면책조항을 집어넣어 미래 불확실성에 대비하려는 상황이다.
외신 보도를 보면 특히 아스트라제네카의 경우 면책을 허용하지 않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른 경쟁 업체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백신을 공급해줄테니 나중에 소송 리스크가 발생하면 배상책임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흡수하라"는 취지의 요구다.
유례 없는 최악의 팬데믹 국면에서 비정상적인 속도와 임상단계 단축 등으로 개발된 백신 등 모든 게 '뉴 노멀'인 상황에서 과연 한국 정부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면책 요구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관련해 집단소송 분야에서 국내 권위자인 A로펌 대표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글로벌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면책조항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는 "정부 입장에서는 해당 백신을 조속히 전국민에게 접종했을 때 얻는 이익과 손해를 비교해 면책조항 수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라며 "조속한 접종으로 민생경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국민편익이 증가하는 규모가 수 조원에 이르고, 이것이 부작용에 따른 소송 발생과 피해배상액 등 수 천억원보다 큰 것이면 제약사들의 면책조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사들이 요구하는 면책조항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향후 백신 부작용이 인정돼 최종 확정되는 손배액이 예컨대 1000억원이라면 제약사는 100억원만 책임지고, 정부가 900억원을 배상하는 방식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면책조항을 포함해 계약의 모든 민감한 내용들에 '비밀유지' 의무를 부과하려는 글로벌 제약사들의 요구 역시 한국 정부는 물론 다른 국가 정부들도 불가피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 변호사는 전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구매 예산이 자신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것인 만큼 백신의 안전성 정보를 포함해 계약의 구체적 내용들을 정보공개 청구로 얻으려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정부 역시 양자 간 계약의 일방인 만큼 정보공개 청구가 접수되더라도 거래 상대방(글로벌 제약사)이 요구한 비밀유지 의
이처럼 백신 부작용과 이에 따른 손배소 리스크 등 향후 막대한 법률적 리스크로 자신의 목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소관부처 공무원들은 자신의 직위를 걸고 지금 글로벌 제약사들과 밀당을 벌이고 있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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