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남아시아 주요 국가들의 최저임금이 줄줄이 인상된다. 중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지만 저임금 매력이 갈수록 줄어들 전망이다. 한국을 비롯해 현지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에 적잖은 부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는 2018년 봄 최저임금을 33% 인상할 방침이다. 미얀마 국가최저임금책정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9일 2018년 하루 법정최저임금을 기존 3600챠트(약 3000원)에서 4800챠트(약 3700원)로 올리기로 결정했다. 미얀마 노동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5800챠트에 못미치지만 2015년 9월 최저임금이 도입된 이후 첫 인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상당한 변화다. 미얀마 정부는 "물가상승률을 반영하고 노동자들의 대우를 개선하려는 취지"라며 "두 달간 정부 관계 부처의 의견을 수렴한 뒤 최저임금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총선을 앞두고 있는 국가들은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이 노동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선심 쓰듯이 임금을 올릴 수 있어서다.
올해 총선이 예정된 말레이시아에서는 유력 노조인 '말레이시아 노동조합회의'가 월 920~1000(약 25~26만원)링깃인 최저임금을 전국 일률적으로 80% 인상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지만 이번 총선은 야권 총리로 추대된 말레이시아 국부(國父) 마하티르 모하마드 전 총리와 나집 라작 총리의 초접전이 예상되고 있어 최저임금을 두고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 경쟁이 촉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오는 7월 총선을 치르는 캄보디아는 훈센 총리가 앞장 서서 최저임금 인상했다. 장기집권을 노리는 훈센 총리는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대폭적인 임금인상을 내걸어 약진하는 것을 보고 153달러인 월 최저임금을 올해 160달러로 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는 170달러까지 끌어올렸다. 이로써 캄보디아 인건비는 태국 수준에 근접했다.
최저임금 인상 후유증을 염려해 속도 조절에 나선 국가도 있다.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최근 몇년간 저임금 인상률이 두 자릿수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한 자릿수로 낮췄다. 최저임금 인상이 소비 진작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지만 저렴한 인건비를 보고 진출한 해외 기업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철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베트남 당국은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13% 인상할 것을 주장했지만 평균 6.5%만 올리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인도네시아도 올해 최저임금을 8.71% 올리기로 결정했다. 인도네시아는 무리한 최저임금 인상이 기업에 부담을 주고 결과적으로 경제 성장에도 걸림돌로 작용하자 2016년 최저임금 산출 방식을 바꿨다.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은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잇단 최저임금 인상 조치는 섬유·봉제·조립 등 전형적인 노동집약적 기업에 악재가 될 전망이다. 캄보디아에선 미국·유럽 등 선진국 기업들이 공장 가동
전문가들은 동남아 진출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 등 '인건비 리스크'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동남아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커지면서 근로자들의 권리 의식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은 '대세'가 됐고 속도와 시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임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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