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 '부동의 실세'였던 이방카 트럼프·재러드 쿠슈너 부부의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지적이 미국 정가에서 나오고 있다. 실세인 것은 분명하지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 자주 엇박자를 내는 모습에서 이들 부부의 입지가 좁아진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보내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이방카 부부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앤서니 스카라무치가 백악관 공보국장직에서 해임됐다는 소식의 숨은 피해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스카라무치를 중용하도록 권한 게 이들 부부였기 때문이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방카 부부가 눈엣가시였던 라인스 프리버스 전 비서실장과 그의 측근들을 백악관에서 배제하기 위해 스카라무치를 선봉에 세운 것이라고 보도했다. 프리버스 전 실장은 지난 5월부터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백악관 내부 정보 유출자로 지목돼 이방카 부부의 눈밖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스카라무치의 지나친 언행은 존 켈리 신임 백악관 비서실장의 심기를 거슬렸고, 트럼프 대통령이 경질을 승인하자 오히려 켈리 비서실장의 영향력이 급상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방카 부부는 반대급부로 위축되는 모양새다. NYT는 "켈리가 백악관 운영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쿠슈너,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스티븐 배넌 수석전략가 등 백악관내 거물들도 그를 따르려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정책 측면에서도 알려진 바와 다르게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0일 기사를 통해 트럼프 행정부 내 이방카 부부의 정책 영향력이 과대평가됐다는 주장을 폈다.
이방카 부부의 허점은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갑자기 발표한 '트랜스젠더(성전환자) 군복무 금지' 조치에서 드러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회정책, 특히 성소수자 권리 보호에 큰 영향력을 끼쳐왔지만 이번 정책 결정과정에선 완전히 배제됐기 때문이다.
백악관 관계자들은 이방카가 우연히 스마트폰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확인했다 관련 내용을 처음 접했고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이방카 부부는 이미 지난 2월 성소수자 보호조치를 박탈하는 '반 성소수자 행정명령'에 서명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한 번 뜻을 꺾은 바 있지만 이번 발표엔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이방카 부부는 지난 6월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변화협약 탈퇴 결정도 반대한 바 있다.
그러나 그때 역시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채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 선언을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특히 쿠슈너는 최근 눈에 띄게 활동력이 저하된 모습이다. 쿠슈너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만능 장관(Secretary of Everything)'으로 불리며 백악관의 모든 업무에 손을 뻗쳤으나, 요새는 연방정부 기술 혁신과 같은 지엽적인 사안만을 다루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지적했다.
이방카 부부의 영향력 감소를 두고 여러가지 설이 제기되고 있다. 폴리티코는 과거 민주당에 기부금도 냈었던 이들 부부의 온건 리버럴 성향이 원래부터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최근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린 영향일 가능성도 있다. 쿠슈너는 최근 민주당 등에 의해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으로 지목받으며 사퇴를 요구받았다. 그는 지난달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의혹에 대해 해명하기도 했다. 이방카 역시 민주당의 수사 요구에 시달리고 있어 최근 전담 변호사를 고용해 대응에 나서는 모습
이방카 부부가 제압한 것으로 평가됐던 배넌이 아직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이방카 부부를 따돌린 파리기후협약 탈퇴, 트랜스젠더 군입대 불허 정책 등은 모두 배넌의 작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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