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죄어오는 러시아 내통 의혹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러시아 측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공개했다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측과 매우 밀착한 주변관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데다가 더 큰 의혹에 직면하게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주니어는 11일(현지시간) "완벽하게 투명하기 위해서"라며 러시아측 변호사와 자신의 회동을 주선한 러시아 팝스타 에민 아갈라로프의 대리인 로브 골드스톤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공개된 이메일에 따르면 골드스톤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지원하려 한다. 그래서 힐러리 민주당 후보가 러시아와 거래했다는 정보를 기꺼이 제공할 의사가 있다. 이 정보를 갖고 있는 러시아 인사와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에 대해 "당신이 말한 내용대로라면, 정말 좋다(I love it)"면서 "다음 주에 내가 돌아와서 전화로 먼저 얘기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또다른 이메일을 보내 "언급했던 변호사를 트럼프타워에서 만나고 싶다. 약속 시간을 정하자"라고 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후 지난 해 6월9일 뉴욕 맨해튼 트럼프타워에서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 변호사를 만났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기된 러시아 내통 의혹은 측근들이 러시아와 접촉했던 정황만 있고 구체성이 부족했으나, 트럼프 주니어가 공개한 이메일은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러시아와 내통을 시도한 실체를 드러내고 있어 주춤하던 러시아 스캔들이 재점화하는 형국이다.
특히 트럼프 주니어가 이메일을 주고받은 이후 러시아 변호사와의 만남에 당시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이던 폴 매너포트와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까지 대동한 것은 고의성과 계획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메일을 모두 공개함으로써 의혹을 씻어내려 했으나 정치권과 언론은 트럼프 주니어가 오히려 러시아의 대선개입을 유도했다고 비판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마크 워너 민주당 상원의원은 "트럼프 진영은 러시아가 자신들을 도우기 위해 애쓰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런 러시아의 개입을 환영했다"면서 "대선 때부터 인수위를 거쳐 정권 출범 후까지 '러시아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일라이자 커밍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성명을 내고 "트럼프 주니어가 공개한 이메일은 미국 대선에 개입하려는 러시아를 트럼프 진영이 지지했다는 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힐러리 전 국무장관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였던 팀 케인 상원의원은 "이제 러시아 스캔들은 단순한 사법방해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며 "위증과 허위 진술, 심지어 반역혐의로까지 흘러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일었다.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선거운동을 하다보면 선거를 돕겠다는 외국 정부의 제안을 받기 마련"이라며 "그러나 그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노(No)'여야 한다"고 했다. 리 젤딘 공화당 하원의원은 "트럼프 주니어는 그 변호사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며 "트럼프 주니어가 내놓은 이메일은 지금까지 해왔던 얘기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들은 트럼프 주니어의 이메일이 러시아 스캔들의 결정적인 증거라고 지목했다.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트럼프 주니어가 로버트 뮬러 특검에게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전달했다"고 했고,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주니어의 이메일은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국면을 바꾸는 결정적인 요소"라고 진단했다.
CNN은 긴급뉴스를 통해 "트럼프 주니어가 힐러리의 추문에 대한 민감한 고급정보를 취득하려고 러시아 정부 변호사를 만났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 파란이 일자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 중인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트럼프 주니어와 러시아 정부 측 변호사의 만남과 이메일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의회 상원 법사위는 2016년 1월 미국 비자발급이 거부됐던 베셀니츠카야 변호사가 어떻게 6월에 입국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국무부와 국토안보부에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외국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정보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반역죄가 성립할 수 없고, 뇌물이 오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모 혐의를 두기도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트럼프 주니어는 "상대 후보에 대한 조사 차원에서 그들을 만나려고 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그들로부터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했다. 그들과의 회동은 시간낭비였다"고 반박했다. 또 "이 만남에 대해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았다"고 진화를 시도했다.
트럼프 주니어가 만난 베셀니츠카야 변호사는 러시아 고위 관리의 아들이 미국에서 돈세탁 혐의로 기소되자 직접 변호에 나서는가 하면, 모스크바 공무원들과 스웨덴 기업 이케아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을
회동을 주선한 에민 아갈라로프와 그의 부친 아라스 아갈라로프는 모스크바의 부동산개발업체 경영자로 2013년 러시아에서 열린 트럼프그룹 주최 미스 유니버스 대회 때 트럼프 주니어와 인연을 맺었다.
[워싱턴 = 이진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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