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25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9명의 대법관 가운데 6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한 대법관 중에는 보수성향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도 포함돼 있었다. 야당인 공화당이 주(州) 정부 웹사이트가 아니라 연방정부 웹사이트를 통해 건강보험상품을 구매한 가입자에게까지 정부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년간 지리하게 이어져온 공화당의 ‘반(反) 오바마케어’ 시도가 최종적으로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환영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이날 합헌 결정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한 후 이렇게 말을 맺었다. “오늘은 미국을 위해 좋은 날입니다. 자, 이제 일터로 돌아갑시다.”
기자석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요즘 기념비적인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연일 값진 정치적 승리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전날에는 미국 의회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신속한 타결을 위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역협상촉진권한(TPA)을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25일에는 ‘겹경사’가 터졌다. 연방대법원의 오바마케어 합헌 결정과 함께 TPP협상의 마지막 장애물로 여겨졌던 무역조정지원제도(TAA) 법안까지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어냈다. 미 하원은 TAA 법안을 ‘찬성 286, 반대 138’로 통과시켰다. 2주 전인 지난 12일 미 하원은 같은 법안을 ‘반대 302, 찬성 126’로 부결 처리했었다. 극적인 반전에 성공하면서 이제 TPP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가 됐다.
이달 말이 시한인 이란 핵협상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부러워할 만한 거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외교적으로는 이란·쿠바와의 화해, 경제적으로는 전세계 GDP(국내총생산)의 40%를 아우르는 TPP 타결, 국내적으로는 건강보험 개혁 완수라는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11월 중간선거에서 여당인 민주당이 참패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42%까지 곤두박질쳤을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대성공이다.
미국 언론들은 잇따른 정치적 승리에 힘 입어 오바마 대통령은 상당기간 레임덕(임기말 권력 누수현상) 걱정없이 국정을 주도해 나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같은 대성공의 배경에 오바마 대통령 특유의 리더십이 있음은 물론이다. 최근 두각을 나타내는 그의 리더십은 ‘변치 않는 뚝심’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오바마케어, TPP, 이란 핵협상에 이르기까지 그의 업적들은 대부분 폐기 또는 포기 직전까지 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이런 역경이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를 꺽지는 못했다. 그의 무기는 끈질긴 대화와 설득이었다. 그러나 ‘독불장군’은 아니었다. 상대편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보완을 마다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과정을 통해 적을 동지로 바꿔놓았다.
실제로 그를 레임덕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은 여당인 민주당과 친정 격인 진보세력이 아니었다. 야당인 공화당 지도부와 보수성향이 강한 대법원이 그를 수렁에서 건져냈다.
반대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목소리를 마냥 낮추기만 한 것은 아니다.
TPP 관련법안 처리에 지원을 아끼지 않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 등 공화당 지도부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수시로 ‘방해꾼’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또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보수성향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한때 임명에 반대했던 인물이다.
타결이 임박한 TPP 협상은 오바마 대통령의 리더십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지난 달 8일 오바마 대통령은 TPP에 반대하는 미국 재계를 달래기 위해 미국 서부 오리건주로 날아갔다. 그곳에 위치한 나이키 본사를 방문해 “중국이 글로벌 경제규칙을 쓰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며 설득에 나섰다. 나이키는 TPP가 체결되면 향후 10년간 미국에서 일자리 1만개를 창출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달 초에는 독일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으로 가면서 이례적으로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 민주당 하원의원들을 대거 탑승시켰다. TPP 관련법안 통과를 위해 여당 의원들을 상대로 ‘전용기 로비’를 벌인 것이다.
지난 12일 TAA 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되자 백악관에는 비상이 걸렸다. TPA와 TAA 법안을 따로 처리한다는 ‘전술적 변화’와 함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를 주도한 낸시 펠로시 하원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집요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결국 펠로시 대표는 25일 “이제는 전투의 열기를 낮추고 정책이 국민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이성적으로 논의할 때”라고 선언했다.
국민과의 잦은 소통도 오바마 리
[워싱턴 = 이진우 특파원 / 서울 = 이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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