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나면 기관투자가가 왜곡된 가격으로 채권을 받았을 뿐 아니라 원칙대로라면 채권을 확보할 수 있었던 투자자들도 주간사 참여로 인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셈이 된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KB증권이 채권 발행 대표주간을 맡고도 간접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한 정황을 발견해 내부적으로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 실제 금감원이 KB증권 검사에 나설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지난달 26일 발행된 우리은행의 4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과 이달 29일 발행된 신한금융지주의 4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 발행 과정이 검토 대상이다. 두 건에서 KB증권은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다른 중소형사들에 참여를 요청한 뒤 채권유통시장을 통해 이를 되사온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 채권을 공모로 발행할 경우 채권금리는 수요예측을 통해 결정된다. 먼저 발행기업과 주간사가 적절한 수준의 채권금리 범위를 제시한다. 이후 투자자들은 채권금리로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숫자에 금액을 투자한다. 수요예측이 끝난 뒤 신청 가격 분포에 따라 더 낮은 금리를 신청한 순서대로 채권을 가져간다. 기업의 공모액까지 투자금이 다 들어오는 수준에서 금리가 결정되는데, 가령 1000억원의 공모채 수요예측 결과 금리가 2.5%로 결정됐다면, 금리를 2.5% 밑으로 적어 낸 투자자는 채권을 투자금만큼 가져가게 된다.
문제는 수요예측 참여가 금지된 발행주간사가 발행에 참여하면 채권금리도 다르게 결정된다는 데 있다.
우리은행의 신종자본증권 투자설명서에 따르면 금리는 4000억원이 모인 4.4%에서 결정됐다. 예를 들어 실제 물량을 가져간 금액 중 1000억원이 수요예측에서 빠진다고 한다면 채권금리는 4.53%에서 결정됐어야 했다. 이 경우 4.4%에서 4.53% 사이 금리로 신청한 투자자는 받아야 할 물량을 받지 못하게 된 셈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발행 주간사가 간접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해 채권 가격이 왜곡됐다면 심각한 시장 교란 행위"라며 "결국 일반투자자만 피해를 입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이달 29일 발행된 신한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에도 유사한 정황이 나타났다. 이때는 KB증권과 삼성증권이 공동으로 대표주간을 맡았다. 실제 발행이 이뤄지기 이전인 27일 KB증권 지점을 통해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을 구할 수 있는지 물어보자 3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선착순으로 거래가 진행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요예측 결과 KB증권이 700억원어치를 가져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27일까지 시장에서 신한금융지주의 신종자본증권은 거래된 바가 없다.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못한 증권사가 채권이 발행도 되기 전에 물량을 확보했다고 밝힌 셈이다. 함께 대표주간을 맡은 삼성증권의 지점에 같은 질문을 던졌으나 발행 주간사로 참여해 보유한 물량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KB증권이 주간을 맡은 신종자본증권의 수요예측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이유로 지점 수요가 꼽힌다. 신용도가 높은 금융사의 신종자본증권은 일반투자자에게 인기가 높다. 일반적인 회사채나 금융채가 기관투자가 수요가 중심인 것과 반대다. 금리가 높기 때문이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없는 영구채로, 일반 채권보다 변제 순위가 뒤로 밀린다. 같은 회사의 무보증사채에 비해 채권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기관투자가는 규정상 신종자본증권을 담기 부담스럽지만 일반투자자는 믿을 수 있는 금융지주와 은행의 채권을 높은 금리로 보유할 수 있다.
KB증권 관계자는 "주간사로 수요예측에 참여한 바가 없다"며 "발행 공시 이후 지점에서 수요 문의가 많이 들어와
특히 최근 고객들의 고금리 니즈가 커짐에 따라 KB증권 같은 대형사는 판매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채권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중소형 증권사들이 이를 활용해 KB증권에 재판매 목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설명이다.
[정희영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